거듭난 사람은 용서하고 사랑한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현대의 기독교 신자들이 가장 오해하고 있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영’입니다. 거기에서 파생된 ‘영적’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에 대해 생각할 때에 영은 육신이 아니니 물질적인 세계를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영의 세계에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영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이런 것들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아닌 악한 영의 일에 미혹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그것이 그들의 성향인지 거기서 벗어나도 계속 같은 것에 미혹됩니다. 우리가 이런 미혹에 속지 않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영적인 것의 열매는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 임한 사람이 육신으로 거룩하지 못한 것을 좇아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 임재하셔서 내 삶을 지켜보고 계시는데 자기 육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삶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셨던 그 모양을 닮아가는 것이 가장 영적인 것입니다. 무조건 멸시와 천대를 당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런 일을 당하실 수 밖에 없었던 선한 마음이 우리 안에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의 본문인 3장 초입까지 하늘에 속한 것들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바울이 갑자기 그 이후부터 육적인 것으로 화제를 바꾼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영적인 생활의 실체, 땅에서 하늘 나라를 사는 사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을 입으라고 운을 띄운 후에 그에 따른 일들을 하나씩 설명해 나갑니다.

첫째 남을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죽은 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유를 대도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신학생이 손양원 목사님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책상 앞에 이렇게 써 놓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너의 두 아들을 죽이지는 않았지?”

구원 받은 믿음의 가장 큰 증거 중 하나가 용서입니다. 성도의 용서는 선한 행위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용서 받은 증거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인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용서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야 정상입니다.

둘째로 용서를 넘어 사랑을 더하라고 말합니다. 하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만약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옥만 면하게 해주시고 천국에는 받아 주시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원수를 사랑하신 주님이 그 안에 들어와 계신 사람이 성도인데 성도에게 사랑이 없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이 세대의 기독교는 용서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입으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다 성도가 됩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는 분명히 성도와 성도 아닌 사람이 구별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엇보다 영적인 삶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면 성령께서 그 뜻대로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그러나 이 은사들이 영적인 세계의 실체는 아닙니다. 영의 세계의 실체는 사랑의 삶인 것입니다. 음식이 실체고 냄비와 칼은 조리도구인 것처럼. 은사는 사랑을 돕는 도구일 뿐입니다.

또 너희 안에 평강을 이루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걱정을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서로의 사이에 미운 것, 막힌 것이 없이 조화를 이루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별의 별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도 서로 시기하고 질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평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도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과 비하하는 감정을 자신 있게 쏟아냅니다. 잠시 분을 참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전혀 그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 성도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가 무너지고 교회가 상처를 입는데 평강이 어디 있을까요?

평강은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사람 안에 흐릅니다. 감사와 찬양이 어떤 심령에 넘칠까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큰 고생하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일까요.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도 하는 일입니다. 진짜 자신은 가망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직 은혜로 용서를 받았을 때 감사와 찬양이 흐릅니다. 이런 사람은 용서합니다. 자기 자식을 죽인 사람도 용서합니다.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지은 성도라면 분명히 용서할 것이고 사랑할 것입니다. 그런 성도가 모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것이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에는 주님의 평강이 흐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진실한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1. 그리스도의 터 위에 용서와 사랑으로 집을 짓고 땅에서 하늘 나라를 사는 성도 되게 하소서
  2. 내가 먼저 용서와 사랑의 성도되어 하나님 나라의 기둥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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