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의 탈을 쓴 반역
마태복음 28장 11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그분을 사랑하던 사람들에게는 가장 기쁜 소식이었지만 그분을 죽이려고했던 사람들에게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께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신대로 이들의 사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가룟 유다의 할 일이 얼마나 저주 받은 일인지를 알려주셨을 때에 가룟 유다는 그 말을 듣고도 자기의 생각한 일을 그대로 행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종교지도자들이 정말로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죽였다면 이 경비병들의 말을 듣고 자기들이 큰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염려를 해야 정상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이 돈과 협박으로 경비병들의 입을 막은 것은 그 일을 벌인 이유가 오직 자기들의 기득권과 부와 명예를 지키려고 한 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주님께서 보여주신 표적들과 그 가르침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주님의 경고를 듣고 주님을 파는 일을 중단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그가 주님을 좇았던 목적이 돈과 명예였기 때문에 그는 그 경고를 듣고도 그 길로 나가서 주님을 파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아닌 것에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 마음이 순수하지 못한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은 생명이 되지 못합니다.
뭔가 특별한 기회가 없어서 자기의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손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리 특별한 일이 생겨도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거기서 내려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겠다고 하던 이들이 그가 부활하신 소식을 듣고서는 돈으로 군병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이것은 지금 말씀을 듣고 변하지 않는 사람은 설사 그 눈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본다고 할지라도 잠시의 갈등이 있을 뿐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 발 앞이 삶의 최종 목적지가 되지 않는 것이 우리 믿음의 가장 큰 모순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기가 높아지려고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먼저 이 믿음의 목적이 오염되어 있으면 아무리 고귀한 신앙의 행위도 오염된 결과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듣고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의 입을 막는 제사장의 마음이 혹시 우리 안에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욕심과 반대되는 말씀이 있을 때에 그것을 무시하거나 부인하려는 마음입니다.
혹시라도 이런 마음이 없는지 잘 살펴 제거하고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