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아닌 고난에 속지 말라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해 우리 인생 가운데 시련을 두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련 가운데 둔 첫 번째 목적은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의 문제와 고난은 그분 앞에 올바로 나아가 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시편 34:19)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으로부터 무엇 인가를 배우게 합니다.
제가 고난을 통해 얻은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미국인의 시시한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일주일간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시시하다’는 이 단어는 “도량이 좁은, 하찮은”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나는 이 설교에 심혈을 기울였고 이것을 강단에서 강하게 선포하고자 했습니다.
그 설교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동안 선교사 부부들 중 롤랜드와 하이디 베이커 부부가 보내 온 뉴스레터를 읽었습니다. 베이커 부부는 자신들이 이동할 모잠비크의 상황에 대해 썼습니다.
모잠비크는 UN이 지명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들 중 하나 입니다. 이곳의 상황은 장기적인 유혈 내전으로 악화되어 있으며 이 나라의 기간산업은 파괴되었습니다. 도로, 다리, 마을, 학교 그리고 병원 등은 훼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은 난민이 되었습니다.
또한, 수천명의 어린아이들이 말라리아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검게 전소된 마을을 헤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헐벗은 채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롤랜드는 최근 남아프리카 출신의 크리스챤들을 소형트럭에 태워서 이 절망적인 나라로 들어 갔습니다. 그들은 지급품들을 나누어주며 그 밤 국경을 건너 모임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국경문이 5시에 닫히기 때문에 일행은 서둘러서 차를 몰았습니다. 그러나 국경까지 약 5마일 정도를 남겨 놓고 트럭은 길을 벗어 났고 속도도 떨어졌습니다. 운전자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페달을 힘껏 밟았지만 트럭의 속도는 계속 떨어져 갔습니다. 낙담한 사람들은 자신들 앞으로 다른 차가 지나가는 보았지만 그 차는 결국 멀어져 갔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약 5시 2분전이 되어서야 국경 근처에 있는 고객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그러자 마자 엔진이 곧바로 꺼져버렸습니다. 트럭은 전혀 까딱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행들 모두 “주님, 어찌하여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는지요?”라고 의아해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국경 안내자들이 달려오면서 흥분하여 소리쳤습니다. 잠시 후 헬리콥터가 착륙했고 남아프리카 정부요원 한 명이 내렸습니다. 롤랜드는 그에게 다가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국경 건너에서 폭발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교전중인 적군들 중 하나가 달리던 차를 폭파했습니다.”
롤랜드는 부상 당하거나 죽은 사람들을 헬리콥터로 실어 나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차가 바로 그들 바로 앞에서 달리던 차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트럭 또한 제대로 달렸더라면, 그들 또한 폭탄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롤랜드 일행의 운전자는 시동을 거느라 열쇠를 꽂았습니다, 그러자 트럭은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차는 모잠비크 내에서도 밖에서도 잘 달렸습니다.
엄청 나기도 하고 모든 고통을 기록해 놓은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나는 “우리 미국의 크리스챤 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고난과 비교나 할 수 있을까?” 이 사람들에게? 우리의 상한 감정과 재정적인 문제를 그들의 잔혹한 시련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우리의 문제는 아주 사소한 것 같고 너무도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작업장에서 “일진이 좋지 않은 날”일 때마다 어깨가 축 쳐져서 웅크리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 나를 비방했어!” “상사한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어!” 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야 할 신용카드 청구서가 산적해 있을 때 “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지만 나는 여전히 뒤떨어져 있어. 나는 해나갈 수가 없어!”하며 마치 인생이 끝난 것처럼 생각합니다.
많은 신자들은 기가 꺾이고 비관적이며 공포감을 떨쳐 낼 수가 없는 무서운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베이커 부부의 뉴스레터를 읽고 난 후, “어느 누군들 자신의 우울함을 기아, 투옥, 불구가 된 신체, 전소된 가정, 살해된 가족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소위 우리가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사소하거나 도량이 좁은 것 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강단에 서서 자신들의 감정적인 문제 와 개인적인 상처에 초점을 맞추는 크리스챤들에 대해 단호한 입장으로 설교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우울함으로 고난 받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사람들을 심하게 꾸짖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다른 지역에서는 미국인들이 알지 못하는 방법들로 고통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윌커슨 목사의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