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과 신앙을 구별하라

사도행전 22장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2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 중에는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가 이방인이면서 성전을 더럽혔다고 생각해서 죽이려고 하던 그들은 바울이 히브리 방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잠잠히 그 이야기를 듣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오랜 강대국들의 압제로 인해 오직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이미 오셨다고 선포하는 바울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다시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은 메시아께서 전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질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압제를 당하면서도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티어 왔는데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이방인들도 위하신다는 말을 듣자 폭발해버린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조선시대 역사를 머리로 아는 것 같은 지식이 아니라 불에 탄 음식을 먹으면 암이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삶을 바꾸는 지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더 많이 알아가고 동시에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고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믿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지식이 고집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완고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 즉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반면에, 바른 지식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을 선한 싸움이라고 칭찬하며 그것 때문에 욕먹고 박해를 받는 것을 상으로 보상받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완고한 사람들은 교만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앙연륜과 경험, 그리고 지식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들의 신앙연륜은 그저 교회에 출석한 햇수에 불과할 뿐이고 그들의 경험과 지식은 성경지식과 세상지식이 뒤섞여 결과적으로는 진리와는 상관 없는 고집일 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자기에게 이런 것들이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날마다 먼지를 털어내면 쉽게 없어지지만 오래되면 습기와 뒤섞여 쉽게 털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잘못된 것은 빨리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이 삶에 자리잡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술과 담배 약물 등 육체와 정신에 해롭고 중독성이 있는 것들을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 마시지 말라는 말이 어디 있느냐, 또는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느냐 등의 이유를 대면서 술 마시는 것을 옹호하고 담배도 같은 이유로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신앙을 원한다면 이런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적당히 조절할 수 있더라도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기독교 신앙의 표본이 될 수 있는데 그 사람이 그것을 보고 거기에 빠져 몸과 마음이 망가지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또 불필요한 오락과 세상 문화도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드라마에 빠지면 하나만 봐도 20시간 가까이 삶에서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일생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 사신 분의 집에 가보니 CD와 LP가 수 천장이 있었습니다. 한 번씩만 들었어도 수 천 시간을 거기에 투자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라도 있어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말은 곧 예수님 믿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세상의 일과 똑같은 스트레스라고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일들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의 영적인 유익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직 예수께서 우리의 온전한 기쁨과 안식이 되지 못한 것을 인정할 때 그 믿음을 향해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메시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이 우리가 원하는 예수님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완고한 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날이 갈수록 주님과 멀어질 것이고 작은 것이라도 아닐 때는 회개하겠다는 마음으로 살면 날마다 주님과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성도로 참되고 영원한 복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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