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바울을 안다!
사도행전 19장 13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늘에 알려지지만 성령충만하면 귀신들에게도 알려진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바울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는데 하나는 귀신이 바울을 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악귀가 귀신입니다. 사람들의 선입견을 피하기 위해서 개역개정판부터 사용하는 단어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귀신에게도 알려진 종이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한 선교지에서 어떤 여성이 귀신이 들렸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교인들이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귀신이 나가지를 않아 먼 곳에 있는 선교사님을 모시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 안에서 발작하던 귀신이 갑자기 두려워서 벌벌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00이라는 아이가 오고 있다. 그 아이는 기도를 많이 해서 나는 그 아이를 이길 수 없다” 얼마 후 그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귀신은 바로 도망갔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금식과 기도가 없으면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구원 받은 믿음과 악한 영들을 대적하는 믿음은 다릅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는 사람만 악한 영들과 직접 싸울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귀신들에게 알려진 것은 그만큼 그의 삶에 금식과 기도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금식과 기도가 생활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귀신을 좇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그 이름을 가지고 오시기 전에는 귀신 들린 사람은 많았어도 귀신을 좇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처음 귀신을 좇으셨을 때 유대인들은 깜짝 놀라면서 그 능력을 ‘권세 있는 새 교훈’이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좇아낼 수 있습니다.
본문의 스게와의 아들들은 실패했지만 다른 마술하는 사람들도 이 일을 행했다는 말로 미루어 보아 이 믿음 없는 사람들조차 그 이름을 사용해서 귀신과 대화를 하거나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일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라면 스게와의 아들들이 이런 일을 할리가 없겠지요.
무엇을 말합니까? 그 이름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 이름의 능력만을 믿는 자들도 사용했던 능력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를 통일하시고 잡힌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 금식하고 기도하며 그 이름을 사용할 때 능히 악한 영을 대적할 뿐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것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일을 보고 들은 사람이 두려워 하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며 마술을 하던 사람들이 엄청난 양의 마술 책을 태워버렸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그 이름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어둠 가운데 행하는 자들을 빛으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능력이 목적이 아니라 구원이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뜻대로 그 이름을 사용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회개와 구원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은 우리의 기업입니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그 뜻을 전하고 이루는 성도로 그 기업의 영광을 영원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