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쟁쟁하여
저녁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분명히 전도 결과 보고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한 기대가 클 것이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내가 한 명도 전도를 못하고 들어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텐데…… 이를 어쩐담!
방학 중 며칠 동안 집중적인 전도훈련을 받고 밖으로 실제 전도를 나온 것이다. 사람은 수없이 많이 만났지만 단 한 명도 예수님을 영접하겠다는 결신을 하지 않는다.
내 손에는 밖으로 나올 때 나누어 받은 결신자 카드가 쥐어져 있었는데 그대로 백지 상태였다. 학생들이 전도 훈련 받을 때 수칙 중 하나가 되도록 동성에게 전도하게 되어 있다.
혹시 이성에게 전도하다가 난감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여학생에게 계속 거절을 당한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한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몇 시간째 거절만 당했더니 이젠 목소리 까지 힘이 없다.
겨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저는 CCC전도훈련을 받고 전도대회 나왔어요. 여러 사람을 만나서 전도했지만 아무도 결신을 안 하네요. 저는 단 한 사람이라도 결신자 카드에 이름을 받아 가지고 들어가야 해요. 그러니까 거절하지 말고 이 카드에 이름, 주소, 학교 등을 써 주세요.”
애원에 가까운 나의 부탁에 그 학생은 결신서를 받아 쓰기 시작했다.
“이 카드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겠다는 서약서예요. 순서로 말하면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한 후에 이 결신서를 씨야 하는 거예요.” 내가 내민 결신서에 잘 쓰는 글씨로 척척 빈칸을 메워 가던 그 학생은
“그럼 더 이상 쓸 수 없어요! 내가 이것을 써 주어야 학생이 좋을 것 같아서 써 주었을 뿐이에요”하고는 결신서를 쓰다가 말고 나에게 되돌려 주었다.
할 수 없이 난감한 얼굴로 뒤돌아서는데 그 학생이 자기가 쓰던 결신서를 다시 달라고 하더니 나머지 빈칸도 말없이 다 써 주는 것 이다.
이 결신서는 주소, 이름만 물으면 좋으련만 왜 그렇게 묻는 것이 많은지…“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형사가 취조 하느냐고 반발하며 몇 마디 대답하다가 가버리고 만다.
“학생! 내가 결신서 선불해 준 거예요. 나중에 진짜 나에게 전도하 러 와야 할 거 아네요?’’
“주소랑 이름을 알았으니까 꼭 다음에 찾아갈게요. 이 결신서는 서약서니까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신 거예요. 선불로!”
훈련 장소에 뿔뿔이 흩어졌던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 명도 전도 못한 사람이 태반이 넘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그냥 들어올 것을…….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결신자 카드를 받아 온 사람들은 신나서 전도한 간증을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오히려 의기양양 한 얼굴로 지금까지 전도내용을 간증한 다른 사람들에게 질세라 멋지게 전도한 것으로 말하였고 결신서는 그 학생이 자진하여 쓴 것으 로 거짓말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어! 우리들은 어린이 전도밖에 못했는 데 저 학생은 역시 건장한 청년에게 전도를 해내다니…”
다른 사람들이 칭찬할수록 내 가슴은 거짓 결신서에 대한 찔림으로 돌아왔다.
그 날 우리는 결신서에 적어낸 그 이름들이 하나님의 생명책에도 진하게 기록되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기도 시간을 가졌다.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나의 부탁에 서슴없이 결신서를 써 준 그 고마운 학생 이 꼭 예수님을 영접하게 해달라고 땀을 흘리며 기도했다.
아니 내가 한 일이 너무 부끄러워서 조금이라도 만회할 생각으로 기도라도 열심히 해야만 했다. 전도팀장은 오늘 결신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도 한 달간은 기도해 주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다짐을 시켰다.
내 인생에 전도라는 소리만 나오면 그 기억은 마음을 무겁게 했고 찌르는 가시가 되었다. ‘너는 그 학생에게 한마디 전도도 안 했잖아. 그에게 결신 기도도 안 시켰잖아.
‘네가 한 일이 무엇이 있었는데 전도했다고 거짓말로 잘난체한 것이지’ 한동안 이런 참소가 나의 귀에 쟁쟁했다. 그 학생에게 약속해 놓았지만 그 후에 그를 다시 찾아가 전도도 안했다.
오히려 나는 그 학생을 까맣게 잊었다. 그렇게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며칠 전 그 날 버스 정류장에서 나에게 예수님 영접 결신서를 미리 써 준 그 학생이 우연히 나를 찾아온 것이다.
어느 교회의 홈페이지 속에서! 너무나 흘륭한 목사님이 된 모습으로 그가 쓴 신앙 간증문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나는 그 날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여학생의 전도를 받았습니다. 이 학생은 나에게 다가와 다른 사람처럼 노련하게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서 있더니 오늘 열 명도 더 만났는데 아무에게도 결신서를
받지 못했다고 금방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까지 거절할 수 없어 결신서를 써 주었는데 옆에서 쉬지 않고 종알대는 말이 ‘이것은 예수님 믿겠다는 서약서예요. 이것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했다는 서약서예요.’ 나는 그 자리에서 그 말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학생의 작은 목소리가 매일 귀에 쟁쟁하여 나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 날 내가 써 준 서약서 대로 진실로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그래서 나는 주님을 위해서 내 인생을 다 드리기로 결심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유정옥 사모님의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