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렇지!
황소 같은 내가 콩꼬투리 만한 아내에게 등을 떠밀려 길을 나서기는 했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를 않는 다. 우선 지금 사업이 최악이어서 내가 없는 동안 아내가 그 어려운 고통을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세상 물정을 아무리 가르쳐도 아내는 시집올 때 그대로 언제나 철없는 쑥맥이다. 그런 아내에게 짐 지우기에는 이 짐이 너무 무겁다. 머리에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가득 찼다. 내가 이삼 일 자리를 비우면 무슨 큰 일이 날 것 같아 불안하다.
그러는 사이에 청량리로 가는 버스가 왔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차를 탔다. 차창 유리에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던 아내의 얼굴이 어린아이 얼굴처럼 어른거린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저 어린애 갈은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고 기도원을 가다니! 멍청한 놈!’
막 떠나려는 버스를 세워 결국 내리고 말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니 아내가 준 돈이 손에 잡힌다.
‘그냥 이 돈 가지고 어디 하루 놀러 갔다 오는 게 더 났지 기도원은 무슨 기도원!’
아내에게 되돌아갔다.
‘사업장에 앉아 있는 아내는 왜 오늘따라 저렇게 작아 보일까? 왜 오늘따라 저렇게 더 어려 보일까’
내가 들어서자 아내가 화들짝 놀란다.
“여보! 아직 안 떠나셨어요? 제가 안 챙겨 드린 물건이라도 있나요?”
“아니야! 당신 정말 괜찮겠어? 나 없어도 견딜 수 있겠어?”
“글쎄 걱정 마시라니까요. 여기는 나한테 다 맡기고 당신은 이삼 일 푹 쉬다가 오세요. 쉬다가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하시면 더욱 좋고요.”
다시 아내에게 등 떠밀려 나서는 나의 심정은 아내를 폭풍우 휘몰아치는 언덕에 혼자 내버려 두고 떠나는 심정이었다.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지만 아내에게 되돌아가기를 두 번이나 하였고, 버스는 십여 대를 그냥 보냈다.
내가 되돌아 갈 때마다 아내는 도무지 내가 걱정하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 매일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얼굴이어서 더욱 내 가슴이 터졌다.
“나 없는 동안 집에 일찍 들어가고 말 상대 안 되는 거래처 사람이 오면 무조건 나한테 미뤄놔! 무례한 놈들한테 괜히 당신이 상대하고 나서지 말란 말이야! 당신이 원해서 가기는 가는데 오늘 밤으로 당장 내려 올지도 몰라.”
내 속이 얼마나 타는지 모르는 아내는 웃으며 고개만 끄떡거렸다.
기도원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마치 피난 행렬과도 같았다. 아줌마, 할머니, 어린 아이들이 솥단지, 이불 보따리, 옷 보따리 등을 머리에 이고 산 길을 따라 올라가고있었다. 산은 아직 눈으로 덮여있어 추운 바람이 골짜기를 쓸어내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기도원이라니? 할 일 없는 아줌마, 할머니, 어린아이나 오는 곳이지 나같이 건장한 남자가 올 곳이 못되는 곳이잖아. 어디 남자가 한 명이나 있어? 내가 마누라 말 안 듣는다면서도 결국은 이 짓을 한다니까.’
그 길로 되돌아오려는 마음이 불끈 올라왔다. 그러나 갈 때는 가더라도 기도원으로 오르는 저 할머니 짐은 들어다 주고 가야겠어서 나는 두서너 할머니의 짐을 지고 산길을 올랐다.
“젊은이 참 고맙기도 하오.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혼자서 기도원엘 가니 젊은이의 처는 정말 좋겠소. 젊은이의 처는 주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여자요.”
할머니들은 내 뒤를 따라오면서 칭찬이 자자하다.
‘모르는 소리 말아요. 이 짐만 들어다 주고 난 다시 집으로 내려갈 거요. 내 아내는 축복을 받기는 커녕 또 어떤 못된 놈에게 빚독촉을 받으며 갖은 수모를 당하고 있을지 몰라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이 말은 나를 더욱 빠른 걸음으로 산 위 에 오르게 했다.
산 속에 어떻게 이렇게 크고 넓은 기도원이 있었을까? 수천 명이 운집해 있었다. 짐만 내려 주고 빨리 집으로 돌아갈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데 한 할머니가 기도원 안까지 짐을 들어다 달라고 하셨다.
할 수 없이 기도원 안에까지 들어가 짐을 내려 주고 막 밖으로 나오려는데 마음속에서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님이 정말 살아있나 물어라도 보고 가야지’ 라고 나를 부추긴다.
어디 자리에 앉아볼까 하고 앞으로 가보니 사람들은 기도원 바닥 에 각각 밍크 담요를 넓게 깔고 거기는 자기들의 자리라고 지키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혹시 밍크담요자락 끝에 걸터앉기라도 하면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한 맹수가 공격하듯 “거기 우리 자리예요! 어서 비켜요”하며 쏘아붙였다. 앞에서부터 중간 지점까지 서너 번 그런 공격을 받았다.
‘그러면 그렇지! 예수 믿는 것들! 내 이래서 예수 안 믿는다니까! 자리 싸움 하려면 여기는 왜 와서 앉아 있는 거야! 여기 온 여자들은 다 밥하기 싫어서 가출한 년들이고 여기 온 남자들은 부도 내고 갈 데 없어 도망온 놈들이지. 하나님! 정말 당신이 살아 있는 신이라면 원수 사랑은 둘째치고 당신 믿는 저 년놈들 자리 싸움이나 말려보쇼.’
아무런 미련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데 한 할머니가 나를 붙든다.
“이보게 젊은 양반! 내 옆에 앉아 나랑 예배 한 번 드려 주겠나? 내 아들 같아서 그러네. 그것이 내 평생 소원이었어.”
그 할머니는 나에게 부탁이 아니라 애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나 할머니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는 사이에 밖에 나갔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백백하게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시끄러운 악기 소리에 맞춰 박수를 치며 찬송을 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노래 중에 아는 것이 한 곡도 없었다. 열광적으로 지휘를 하던 지휘자가 뭐라고 뭐라고 외치면 그 거대한 예배당이 떠나가도록 그들은 함성을 질러댔다.
‘때는 이 때다. 이왕 여기에 이렇게 주저앉게 되었으니 정말 하나 님과 담판을 짓자’ 하고는 “하나님 ! 당신이 정말 살아 있소? 그럼 어디 한 번 나에게 나타나 내 다리 몽댕이 한 번 부셔 놓아 보시오! 그러면 내가 믿겠소”하고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사업하다가 망해서 여기까지 올라와야 했던 나의 비참한 울분이, 두고 온 아내에 대한 불안과 애처로움이, 예수 사랑 운운하면서 자리싸움하는 예수 믿는 것들에 대한 분노가 가슴을 꽉 막고 있는 큰 응어리가 되어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나님이 살아 있으면 어서 나와 보라고 허공에 삿대질하던 나의 손가락 저 끝에 까만 점 같은 것이 보였다. 그것은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거기엔 십자가에 매달린 한 사나이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얼굴은 가시관에 찔려 피가 흘러 내리고 손과 발은 못에 박혀 샘 솟듯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창에 찔린 가슴에서 흐르는 피는 강을 이루어 그 사나이의 몸에서 흐르는 피의 강에 내 몸이 잠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이 꿇어졌다. 그러면서 나의 지나간 세월이 죄로 얼룩진 것을 알았다. 나는 부모에게 살아 있어서는 안 될 자식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살아 있어서는 안 될 남편이었다. 나는 자식에게 살아 있어서는 안 될 아버지였다. 나는 이웃들에게 살아 있어서는 안 될 이웃이었다.
“저는 마땅히 죽어야 하는 죄인입니다!” 나도 모르게 오열이 터져 나왔다. 내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죄에 눌려 죽을 것만 같았다.
“저는 이 무거운 죄의 짐을 감당할 길 없으니 차라리 저를 죽여 주십시오! 하나님!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저를 죽여 주십시오.”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주먹으로 땅바닥을 얼마나 쳤던지 내 손은 시퍼렇게 부어 올랐다. 몇 시간을 몸부림치며 울어댔을까? 십자가에서부터 흘러내린 피의 강이 내 몸을 짓누르고 있는 죄의 무게를 씻어서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때 나의 모든 죄의 짐이 사라지고 바위처럼 무거웠던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는데 입술이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이상한 움직임으로 변하더니 알 수 없는 말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너무 울어서 흐느끼는 일종의 입술의 변화일까? 내 의지는 가장 이성적인데 제어되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이 언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감사와 기쁨으로 터질 것 같은 이 감동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유정옥 사모의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