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준비하라
누가복음 4장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시고 약속하신 일들도 잊지 않고 행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때의 일의 중심에는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 성전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단이 이방인들과 교회들을 부추켜 그들을 미워하고 박해하게 만드는 것을 ‘반유대주의’라고 합니다.
반유대주의의 근간이 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카톨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바로 그들이 예수님을 죽였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으로 여겨서 몹시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구약시대부터 지금까지 많이 교만했습니다. 자기들은 택한 받은 민족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이 하나님께 바르지 못하면 버림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내면적 유대인은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즉 아브라함의 할례가 아니라 그의 믿음이 있어야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말입니다.
사렙다의 과부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이방 땅인 시돈의 과부였는데 엘리야가 가서 그가 가진 마지막 식량을 달라고 했을 때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제 나누었던 말씀의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은 여인도 과부였는데 당시의 과부는 고아와 같은 레벨로 취급 받을 정도로 불쌍하고 미래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간신히 먹고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삼 년반의 흉년을 만났으니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선지자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흉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또 나아만 장군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의 적국인 아람의 군대 장관으로 나병을 고치기 위해 이스라엘에 왔습니다.
아람은 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엘리사를 아람으로 보내주기를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스스로 이스라엘까지 내려온 것만 해도 그에게는 겸손과 간절함을 보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겸손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그를 성대하게 대접해주지 않았습니다. 얼굴도 내밀지 않고 그저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라는 말만 사환을 통해 전해준 것입니다.
화가 나서 아람으로 돌아가려던 그는 “선지자가 더한 것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았겠습니까?”라고 말하는 하인의 말에 마음을 돌이켜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고 그 나병이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내면적 할례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가장 어려울 때에도 말씀에 순종하고 비록 하인이라 할지라도 옳은 것을 말하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할례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진리가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데도 이전에 가졌던 얄팍한 지식이나 자존심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루 하루가 기회라는 뜻은 매일이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굳어버린 사람은 젊은 자라도 가망이 없고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은 노인이라도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선택 받았다는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이전 것은 뒤로 하고 항상 겸손한 그릇을 준비하게 하소서
2. 이 그릇을 준비하기 위해 물질이든 자존심이든 못 버릴 것이 없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