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주신 최고의 보석

내가 시집갔을 때 막내 시누이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나를 얼마나 따르는지 혹시 오빠가 지방에라도 가면 베개를 들고 내 방으로 건너와서 너무 좋아 잠도 못 자고 나를 껴안고 내 손을 만지곤 했다.

“언니! 언니는 다 좋은데 그 예수 좀 안 믿으면 안 돼?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언니가 식구들에게 구박 받는 것이 나는 정말 싫어.”

그러던 시누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집에서 기도하면 부모님 의 불호령이 떨어지니까 우리 둘은 한 사람은 망을 보고 한 사람은 방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몇 겹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도했다.

주일 날 교회에 가려고 방에서 나오면 문 앞에 지키고 있던 아버님이 양동이에 물을 담아 와 우리에게 퍼부으셨다. 그래서 주일 아침이면 문을 열기 전 시누이와 나는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먼저 나간 사람이 양동이 물을 뒤집어쓰면 그 뒤에 나오는 사람은 괜찮기 때문이다.

시누이는 교사 임용고사 보는 날이 주일이어서 임용고사를 포기했고, 우리 교회 무료 탁아소에서 교사로 봉사했다. 무료 탁아소 아이들을 돌보며 쉬는 날도 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덧 스물 여덟 살이 되었다.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데이트 한 번 안 해보았으니 결혼은 어떻게 하나? 스물 일곱은 가볍고 상큼하게 들리는데 한 살 차이인 스물 여덟은 왜 그렇게도 무겁고 우울하게 들려오는지……. 시누이도 내색은 안 해도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갈아 보였다.

“여보! 오늘은 학교에서 고모 신랑감 좀 물색해 와요.” 내가 아무리 졸라도 남편은 시큰둥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3일 동안 단식을 하기로 했다. 단식 기도 제목은 단순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신실하고 충성된 종을 우리 고모의 신랑감으로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단식 첫날, 남편이 무슨 맘이 들었는지 시누이 사진 중에 가장 예 쁘고 잘 나온 것으로 두 장을 달라고 했다.

단식 둘째날, 남편이 학교에서 전화를 했다.
“여보! 신랑감이 나타났으니 우리 순이 미장원도 보내고 좋은 옷도 한 벌 사 입혀. “예, 알았어요.”

나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유명 의류점에 가서 고모에게 멋진 옷을 사 입혔다. 저녁 때 우리 집에 남편과 함께 한 젊은이가 들어섰다. 그 청년은 다 낡은 신발에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하나님! 우리 서로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 게 해주십시오.”

그 청년은 비록 외모는 호화롭게 치장되어 있지 않았지만 꼭 살아있는 예수님 같아 보였다. 우리는 그 청년에게 저녁을 융숭히 대접했 다. 청년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 남편은 “만일 동생이 마음에 들면 내일 그 청년이 전화를 할거야” 라고 했다.

단식 3일째인 그 이튿날, 나는 전화기 옆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저녁 때가 되자 시누이는 나에게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며 화를 냈다. 잘못 오는 전화도 한 통 없이 그날 하루가 다 가고 말았다. 시누이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나는 그 청년에게 전화를 했다.

“저어 잊그제는 제대로 음식을 마련치 못해서 대접이 소홀했어요. 그래서 식사 대접을 다시 하고 싶은데요.”

그렇게 말하면 우리 고모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고 고모가 왜 싫은 지 뭔가 실마리가 나올 것 갈았다.

“저어 사모님! 동생은 제가 맘에 안 든다고 하는가 보군요. 제가 마음에 들면 어제 전화 주신다고 해서 하루 종일 전화기 옆에서 꼼짝 못하고 지켰어요.”

“그럼 전도사님은 우리 고모가 마음에 드세요?” “예.”
와! 나는 너무 좋아서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지만 우아하게 내숭을 떨었다. “그러셨어요. 그럼 고모에게 다시 잘 말해 볼게요.”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엇갈리게 생각하도록 해서 고모에게는 그 청년을, 그 청년에게는 고모를 하루 종일 전화기 앞에서 기 다리게 만들어 서로를 더욱 간절하게 하신 것이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중매 실력을 누가 당할 것인가? 하나님이 중매를 서신 것이니 이 결혼은 무조건 성사되는 것이야!

다시 만나게 된 자리에서 나는 결혼 날짜를 결정하게 하라고 남편에게 종용했다. 남편은 “아무리 빨라도 6개월은 사귀어 보고 데이트도 해보고 해야지” 라고 했다.

“여보 안 돼요. 그 청년 놓치면 고모는 그런 사람 다시는 못 만나 요. 결혼할 마음만 있다고 하면 무조건 결혼시키는 거예요.”

결혼할 마음이 있다고 하면서 그 청년이 우리 방으로 들어와서 말 했다.

“저〜 그런데 사모님! 저는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결혼은 마음 뿐이고 현재는 할 형편이 아니에요.”

“전도사님! 결혼 준비가 따로 있나요. 결혼할 몸이 있으면 됐지요.

“전도사님은 아무 걱정 마세요. 내가 다 알아서 준비할게요.”

첫 선을 본 날짜는 6월 4일이었으니 선본 지 19일 만의 결혼이었 다. 나는 친정 언니에게 얼마의 빚을 얻어 달라고 해서 바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석계역 근처에 10평짜리 아파트를 얻고 살림 장만을 했다.

결혼식장은 우리 교회에 꾸몄는데 인천에서 꽃꽂이 사범을 하고 있는 소꿉 친구가 예식장 전체를 꽃으로 장식해 주었다. 결혼식에 필요한 웨딩드레스, 폐백복, 신부 화장도 주님은 오래 전부터 아는 사람들을 통하여 준비해 놓으신 것이다.

결혼식 피로연 음식은 우리 교회 여전도회에서 즐거워하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풍성하게 준비를 했다.

“고모! 그 전도사님이 부자가 아니어서 우리랑 결혼할 수 있어 다행이야. 그 멋진 전도사님에게 돈까지 있어 봐.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아.”

“그 사람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렇게 서두르면서 야단이야. 내 의견 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지. 나를 쫓아 보내는 것 갈아서 자존심 상해.”
고모는 몹시 마음이 상해 있었다.

“글쎄 나만 믿으라니까. 그 사람은 두고 볼 것도 없어. 나중에 나에게 고마워하게 될 걸.”

결혼 준비 기간 19일 중 청년의 학기말 고사 기간이 일주일이 끼어 있었으니 두 사람의 만남은 거의 없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 어렵게 두 사람이 데이트에 나섰다. 나는 두 쑥맥끼리 어떻게 데이트를 하려나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 나간 지 1시간도 안 되어 고모 가 얼굴이 토라져서 집으로 되돌아왔다. 나의 놀라는 얼굴을 보면서
“그 사람이 건널목에서 내 손을 잡자나!” 그래서 뿌리치고 되돌아왔 다는 것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조금 있으려니까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제대로 들어오지도 못하는 그 청년이 따라 들어왔다.
“저 사모님 ! 건널목에서……

그의 어쩔 줄 모르는 변명을 막으며 나는 “손만 잡으니까 화난거
예요. 꽉 끌어안아 주어야지 화나지 않았을 텐데요! 우리 고모가 토라지기도 잘하죠??

걱정이 되어 말하는 나에게 그는 빙그레 웃으며 “저는 토라지는 모 습이 예뻐요” 란다.

“이그 벌써 팔불출 다 됐네. 천생 연분이니 걱정도 말자.”

이런 웃기는 해프닝 속에 드디어 결혼식 날이 되었다. 그날 양복을 잘 차려 입은 그 신랑은 우리 모두의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그 준수 함이, 그 고결함이 결혼식장 전체에 번져 갔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함께 찬양을 부를 때는 결혼 예식 에 와 있는 모든 사람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고모는 총신대학 신 학대학원생으로 구성된 야웨 찬양단의 축가를 받았다. 성스러움과 웅장함이 부부로 합쳐지는 아름다운 한 쌍을 축복하였다.

고모는 시집 간지 일주일도 안되서 “언니!고마워. 이렇게 좋은 남편과 결혼하게 해주어서. 언니! 이 사람은 살아 있는 예수야!”라고 했다.

주님은 그때의 그 청년을 돈이 없는 가난한 전도사로 위장해 놓으 셨던 것이다. 가난이라는, 사람들이 혐오하는 것으로 덮여 있어서 그의 준수함도 그의 성실함도 꼭꼭 숨겨 놓았다가 믿음이 신실한 우리 고모에게 최고의 선물로 주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고모는 얼굴이 뒤어나게 예쁜 것도 아니고 몸매가 늘씬한 것도 아니고 탐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그토록 흘륭한 목사님 부인이 되어 호강하고 존귀함을 받으며 사는 걸까요?”

“모르는 말씀 마세요. 우리 고모의 믿음은 이 세상 여인 중 최고라 니까요.”

고모는 생활이 어려워도 목회자의 삶에서 단 1분도 이탈하는 일 없 이 충실하게 주의 종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청운동 낡은 빈민 아파트가 부교역자의 사택으로 주어질 때는 자신들의 신혼집이었던 아파트 보증금을 다 교회에 헌금하고 들어가기도 했다. 주님이 집을 주셨는데 살고 있는 집값은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신앙이었다.

지금은 서울 중앙교회에서 담임 목사인 남편과 함께 충실하고 성결하게 일하고 있다. 주님은 믿음이 신실한 우리 고모를 위해 감추어 놓은 이 세상 최고의 보석을 발견하게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그 보석을 발견하고 혹시 누가 그 보석을 캐내어 갈까 봐 마음 졸이며 아주 빠르게 뛰어다녔다.

주님 이 우리에게 주신 그 보석은 날이 갈수록 더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유정옥 사모님의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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