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멍에를 메라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깨닫고 있는 이들에게 그 실수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들은 그런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견디며 한 순간도 결코 놓지 않는 것은 큰 수고와 함께 이에 상응하는 선함이 필요하므로 이 모든 것은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정도라고 보는 것이다.
항상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거룩함이 자란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나약한 초보자가 시작하기에는 결단코 쉽지 않다. 그들은 예수님이 ‘나의 멍에는 쉼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이 사실임을 깨닫지 못했다.
어떻게 멍에가 쉼을 줄 수 있는가? 그러나 순종하고자 하는 자가 자신을 드리는 순간 주님이 친히 그것을 능하게 하는 능력과 기쁨을 주신다. 주님이 내게 배우라 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의 너그러우심이 그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킨다.
주님은 연약한 자녀를 품은 어미와 같이 그들을 인내하시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음을 깨달아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주님이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단지 우리의 순종만을 요청하셨으며, 그리하면 주의 전능하신 사랑이 그들을 굳게 붙잡으시고, 그들을 지키시며, 복주시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 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이 완전한 헌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온전하게 믿지 못했기 때 문에 실패하게 된다.
헌신과 믿음,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포기해 드리는 것,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는 것, 이 두 가지는 상호 내포된 의미가 있으며, 순종이라는 하나의 말씀 가운데 모두 연합된다.
온전한 순종은 믿는 것뿐만 아니라 복종 하는 것이며, 복종 뿐만 아니라 믿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그러한 오해로 인해 제자의 삶이 소망했던 그런 기쁨이나 능력의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것 은 놀랄 일이 아니다.
때로는 예수님이 어떻게 전적으로 당신을 다스리길 원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한 순간이라도 주님이 당신 가까 이에 계시도록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바로 설 수 없고 죄악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때로는 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이길 힘이 없기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당신을 완전히 지키고 도우시기 위해 어떻게 그 일을 담당하시는지를 알지 못하거나 혹은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쪽이든 간에 처음 사랑의 밝은 기쁨이 없어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당신의 길은 완전한 날을 향해 점점 더 빛나는 의로운 자의 길이 아니라 마치 약속된 안식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항상 이르지 못해 사막에서 방황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길과 같게 된다.
오, 지친 영혼들이여! 앞뒤로 날뛰는 어린 사슴같이 여러 해가 지났다면 오늘 평안과 승리, 평화와 안식이 있는 장소가 분명히 있으며, 그 장소, 즉 예수님의 마음은 당신에게 항상 열려 있다는 가르침을 와서 배워라.
그러나 슬프도다!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안에 거하기 위해 그의 멍에를 지고 그에게 가서 배운다는 사실은 너무나 어렵고,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이 종종 죄나 세상보다도 훨씬 더 그 쉼을 방해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렇게 말하다니 실로 엄청난 실수이지만 이미 너무나 자주 그런 말들을 들어왔다! 어머니의 팔에 안겨 쉬는 것이 어린아이에게 노동인가? 피곤한 여행자는 자신의 피로를 풀기 위해 집 안이나 침대 위를 찾지 않는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도 이와 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다 맡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님께 그냥
기댈 뿐이고, 주님은 그 성실하심으로 자기의 품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시는데, 그 축복이 너무나 커서 우리의 좁은 마음으로는 그것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이 약속하신 바이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주님은 진실로 우리를 쉬게 하실 수 없을 것이다.주님이 “내 안에 거하라”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실 때 정말로 쉼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우리가 그분께 자신을 내 드리기만 하면 그분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은 주님의 일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주님의 사랑의 품안으로 과감하게 던져 그의 지키심에 자기를 내어놓자.
안식을 어렵게 하는 것은 멍에가 아니라 멍에를 거부하는 것이다. 예수님께 전심으로 복종하면 우리의 주님이 요, 우리를 지키시는 이가 즉시 쉼을 주실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의 ‘예수님을 깊이 경험하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