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1-12
마태복음 5장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성리학이 통치의 근본이었던 조선시대에 왕이 갖추어야 할 덕목 중의 하나는 측은지심이었습니다. 맹자는 측은지심을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는 마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기 위해서는 그 아픔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합창단 생활을 할 때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던 입단동기가 대학 다닐 때의 일을 이야기해준 것이 기억이 납니다. 여자 동기들은 다 자기를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3학년 수학여행을 준비하는데 몇몇 남학생들이 자기들은 못 갈 것 같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랬던 수원의 유명한 부잣집 딸인 동기 여학생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쟤들은 왜 못 같대요?”
“돈이 없대”
그랬더니 다음 질문이 가관이었습니다.
“왜 돈이 없대요?”
태어나서 한 번도 돈이 없다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이런 기가 막힌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말로 어떤 가난한 사람이 쌀이 떨어져서 사흘을 굶었다고 하니 쌀이 떨어졌으면 빵이라도 사먹지 그랬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배가 고파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고통을 알고, 중한 병에 걸려본 사람이 그 고통을 압니다. 그래서 자기와 같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주님의 말씀처럼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려면 어떤 것을 알아야 할까요? 저는 자기의 절망적인 상태를 알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죄에 빠져 허우적거려본 사람, 인생의 허무함과 절망을 맛 본 것은 기본이고,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자기 안에 있는 죄의 뿌리는 여전히 깊다는 것을 알고 그런 자신을 참아주시는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아는 사람이 남을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아본 사람만 남을 긍휼히 여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저 인간적인 감정으로 하는 것은 세상에서는 칭찬을 받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긍휼이라는 측면에서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소위 율법적인 신앙인으로 이런 사람은 긍휼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보다 더 싫어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는 긍휼을 받아놓고 다른 사람은 긍휼히 여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와 백 데나리온을 탕감받은 자의 비유를 보겠습니다 .
두 금액은 무려 50만배의 차이가 납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누가 내게 어떤 잘못을 해도 내가 주님 앞에 지은 죄의 50만분의 일밖에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쌀 한 가마와 쌀 한 톨의 차이도 여기에 대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지요.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사실은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잠시 마음이 완악해졌다가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마음을 품고 있는 동안은 은혜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심판대 앞에서 특별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2장 13절의 말씀입니다. 이보다 더 심판을 잘 준비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그러므로 지혜 있는 성도라면 누군가 나를 악하게 대할 때, 그것을 보화를 캐내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은 무거울수록 더 많은 축복을 담고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기 어려운 사람을 긍휼히 여겨서 긍휼이 있는 심판을 준비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