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 안에 머물기 위해서

히브리서 8장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고 마음에 부담이 되는 계명에 대해서 쉽게 “그거 율법이야”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에 숨겨져 있는 의미는 “안 지켜도 구원과 상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오해이고 이 시대 교회가 급속하게 타락해 가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한 후에 신학적으로 가장 변한 것 중의 하나가 율법에 관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심하게 표현하면 율법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단 하나의 선한 기능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죄해서 십자가 앞으로 나오게 하는 역할을 할 뿐 나머지는 모두 부정적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13절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같은 말씀이 그런 생각의 근거였습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그대로 인용하는 내용이 정말로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 신약성경에서 ‘율법’이라고 생각하는 구약성경의 말씀이 그대로 사용된다는 말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려고 풀무불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 율법적일까요? 다니엘에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을 지킨 것은 어떻습니까? 온 이스라엘 땅에 우상이 충만하게 만든 아합 왕의 죄를 꾸짖기 위해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한 엘리야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한 율법적인 선지자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부정적인 의미의 율법적인 신앙은 구약이냐 신약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벌 주실까 두려워하는 마음이나 땅의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거나,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의로워져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 할지라도 율법적인 것입니다.

13절에서 “첫 것은 낡아져 간다” 는 말을 9장과 10장의 내용을 가지고 생각하면 율법의 계명이 아니라 제사가 아무 것도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는 말이라는 사실, 그리고 아무도 법을 지켜서 온전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율법을 안 지켜도 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짐승을 드리는 제사가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영원한 제사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속죄의 제사가 필요합니다. 십계명은 오히려 강화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신이나 깎아 놓은 우상만 섬기지 않으면 되었는데 이제는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이전에는 행위가 정결해야 했는데 이제는 마음의 중심까지 정결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긍휼이 없으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진짜 성도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선지자들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패역함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요한도 다 하나님의 긍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제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의 긍휼이 더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믿음은 분명히 뒤로 물러나가는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제 삶에는 많은 죄가 있습니다. 제 마음은 죄가 노다지 수준으로 묻혀 있는 광산과 같습니다. 아무리 파내도 끝없이 나옵니다. 만약 죄가 없는 사람만 천국에 간다면 저는 만 번을 살아도 그 죄를 다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은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되는 것입니까? 법을 통해 알게 됩니다. 로마서의 말대로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는 죄가 죄인지 몰랐지만 율법이 주어지니 자기는 죽고 죄가 살아나게 됩니다.

아무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음에도 교만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킬 수 있는 몇 가지를 지켜 놓고 마치 자기는 아무 죄가 없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듭니다. 바리새인들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가끔 정말 진지하게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보다 더 복잡한 경우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일도 있습니다. 회개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도 평소보다 더 열심을 내고 부지런히 주님의 일을 한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 때 제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묘한 만족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족감은 제 마음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마음이 사라져 버리게 만듭니다.

겸손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유일한 길입니다. 겸손을 잃으면 긍휼도 잃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죄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겸손을 잃지 않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을 폐하시기는 커녕 더 강화하셨습니다.

그 율법의 정죄를 받으면 손들고 주님 앞에 나오게 됩니다. 주님 앞에 나오면 그 긍휼을 입게 됩니다. 그 긍휼을 입은 사람은 이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죄와 싸우게 됩니다. 죄와 싸운다는 말은 여전히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산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게 힘써 주님 뜻대로 살려는 사람에게 더 큰 긍휼이 부어집니다.

율법 때문에 긍휼 안에 들어오고 율법 때문에 긍휼 안에 머물게 됩니다. 지켜서 의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 신앙의 놀라운 신비 안에 머물며 날마다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오직 주님의 긍휼을 힘입어 주님 앞에 나가게 하소서
  2. 온전히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하면서 긍휼 안에 머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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