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여룹 바알)

사사기 6장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치룬 전쟁 중에서 가장 큰 승리 중의 하나가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로 미디안의 수십만의 군대를 상대로 거둔 것입니다.

십수 년 전에 만들어진 300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스파르타와 페르시아 간에 있었던 실제 전쟁을 영화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만든 것으로 상당히 흥행한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설정은 스파르타의 군사는 300명 페르시아 군사는 백만이 넘지만 실제 스파르타의 군사수는 최소 사천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페르시아의 군사는 최대 이십만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영화상에서도 역사적으로도 스파르타는 그 전쟁에서 멸망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의 300용사 이야기는 허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성경의 내용을 믿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것을 믿고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 사람들이 300명이 수십만을 이긴 것은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모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모든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당시 미디안은 그 지역의 약탈자로 메뚜기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약탈한 것이 떨어질 때까지 배불리 잔치한 후에 다음 약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 번 약탈을 할 때에는 문자 그대로 씨를 말리는 잔악무도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난 이 때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긴 벌로 칠 년째 이 약탈자들에게 고난을 당한 때였습니다. 기드온은 숨어서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발각되면 모든 것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모든 고난의 원인이 우상숭배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당장 소망이 보이지 않아 굉장히 의기소침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고 말할 때 그는 바로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라고 반문합니다.

그래도 그 천사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하자 그는 그 표징을 구합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을 쳐서 멸하기까지 세 번의 표징을 구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정말 이 일을 행하실 뜻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하실 수 있는지 그 능력을 의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으로 이런 의심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왜’ 이런 일을 행하시는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의심하지 않지만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싶은 것입니다.

표징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기드온은 자기 아버지 집에 있는 바알의 신상부터 부숴버립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밥이 된 근본적인 이유를 자기 집안부터 제거하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사람들에게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바알신상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바알과 논쟁하는 자’ 라는 뜻을 가진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을 지식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진짜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안 후에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 때문에 미디안에게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 미디안을 제거하려면 우상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실제로 그 우상을 버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만 함께 하신다는 것만 알면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이 그렇지 수십만 군대와 단 삼백 명만 가지고 싸우는 것은 자살 중에서도 최악의 방법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기드온은 세 번의 표징을 구해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작정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망설임 없이 300대 수십만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에 게으른 사람이 많고 뜻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를 구하시려고 아들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만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하라고 우리를 이 땅에 두신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구원을 가장 위협하는 것 중의 하나가 세상에 만연한 탐심 곧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기 안에 있는 우상부터 파괴해야 합니다. 피흘리기까지 이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이 어두운 세상에서 우상에게 목줄기가 잡혀 죽어가는 영혼들을 하나님의 생명의 빛 가운데로 인도해야 합니다.

손 놓고 미디안에게 계속 약탈당하는 이스라엘이 될지 하나님의 뜻을 안 후에 바알 신상을 부수고 300명으로 수십만을 무찌르는 믿음의 용사가 될지는 우리의 결간과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으로 결단하고 순종의 싸움을 싸우는 마지막 때의 기드온, 세상에 만연한 우상들과 싸우는 여룹바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마지막 영적 전쟁에 우리를 기드온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겨주소서
  2. 하나님의 뜻을 아는대로 우상을 부수고 싸움터에 나가는 기드온과 같은 믿음의 용사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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