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성 과부

우리 하나로교회가 종로에서 중계동으로 이전한 직후의 일이다. 백발의 한 할머니가 들어오더니 목사님과 상담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목사 부인이라고 말하자 그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사모님! 제 아들이 간경화증으로 죽어가고 있어요. 매일 술만 먹고 가정을 보살피지 않아 며느리는 갓난 핏덩이를 두고 어느 날 온데간데 없이 달아나 버렸지요. 아내가 달아나자 밥도 안 먹고 술만 더 마셔대더니 요즈음 간경화로 배에 복수가 차오르고 있어요. 병원에서는 한 달 안에 죽는다 하네요. 죽어도 예수 믿고 죽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매일 새벽 아들이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아들이 ‘매일 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달 간 나를 심방해 주는 목사나 전도사가 있다면 예수 믿겠다’면서 아마 한 명도 못 데리고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집에 심방을 해 줄 목사님을 보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거리에 나섰는데 이 교회 십자가가 멀리서 선명하게 보여서 이렇게 왔습니다.”

나는 그 할머니를 보면서 아들이 죽자 주님을 찾아갔던 나인성 과부를 생각했다. 주님은 사회에서 소외된 과부의 애청을 간과하지 않으셨다. 마음을 다해 진지하게 과부를 만나주셨다. 그리고 아들을 잃은 과부의 슬픔을 아들을 살려주는 생명의 기쁨으로 바꿔 주셨다.

“매일 밤 할머니 집으로 심방만 해 준다면 예수를 믿겠단 말씀이지요? 제 가 가겠습니다. 매일 밤 9시요?”

“예! 그 시간을 어기면 안 된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살을 에는 듯 날카롭게 불던 밤 그 아들과 처음 만났다. 영구 임대주택인 그 할머니의 좁은 아파트엔 복수가 차서 배가 불룩하게 부어 오르고 얼굴은 이미 황달을 지나 흑색이 된 아들이 누워 있었다.

밥상에는 무김치 하나와 먹다 남은 밥이 그릇 가장자리에 말라붙고 있었다. 환자의 저녁식사라고는 여길 수 없을 정도였다. 방 안은 앉을 자리 하나 없이 휴지와 옷들로 더럽혀져 있었다. 아들은 나를 보고도 인사 한 마디 없이 오히려 빈정댔다.

“와! 가난한 우리 집에 뭘 찾아 먹을 것이 있다고 오셨나? 당신도 오늘 하루 뿐이지 내일은 다시 안 올 걸…. 우리가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지 모르고 어쩌다 하루 온 목사는 있었지만 이틀 온 사람은 없었어. 목사들도 돈 때문에 이집 저집 찾아다니지? 부자에게나 가지 아마 우리 갈은 가난한 집에서 부 르면 겁날걸. 우리 엄마는 뭐 괜찮은 것만 생기면 목사들에게 갖다 바치느라 자식들은 변변한 것 하나 먹어보지 못하고 자랐어.

우리 엄마는 항상 목사들에게 당하고 살았지. 부자들이 심방 오라고 하면 두 발걸음에 달려가는 것 들이 어머니가 심방 오라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절대 오지 않았어. 한 달? 웃기지 마라! 네가 사흘 연속해서 우리 집에 온다면 내가 개새끼의 새끼가 될게.”

아들의 무례한 행동에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저 울기만 했다. 나는 뿌리치는 그 아들의 손을 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돌아왔다. 그 한 날의 모든 기억들이 악몽처럼 느껴져 정말 그 이튿날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죽은 아들을 살려 내지는 못하겠지만 심방 하나 못한단 말인가?’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하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밤 같은 시간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매일 한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생활의 최우선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성도 중에 저녁에 돌잔치라든지 회갑, 고희, 각종 경 조사가 있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의 부름이 이어지지 않는가?

그러나 매일 밤 갖가지 약속이나 모임들을 취소하고 최우선으로 그 집을 찾아갔다. 쌀과 반 찬, 고기, 과일 등을 싸들고 찾아간 날들이 한 달이 가까워갈수록 그 아들은 여전히 나를 야유했고 무례함은 더해만 갔다. 주님께 ‘저 불쌍한 영혼을 포기 하지 않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간구하지 않으면 그 날로 끝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약속한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그 날은 매일 등을 돌려대고 누워만 있던 그 아들이 일어나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예수를 영접했다.

그는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기 집을 심방한 것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못난 아들을 용서해달라고 했다. 할머니도 울고 나도 울어서 울음바다가 된 그 날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는 어린 두 손자를 기르며 홀로 남게 될 어머니가 가슴에 깊이 박힌 못처럼 아프게 찌르고 있다고 울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우는 아들을 가슴에 안으며 다독였다.

“네가 주님을 영접했으니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내 아들과 천국에 서 영원히 살테니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주님의 은혜로 네 아버지 없이도 너희들을 길렀으니 재범이와 재현이도 걱정 말아라. 주님이 잘 보호해 주실 것이다.”

그는 열흘 뒤 보라매 병원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내 아들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에요. 마치 천사의 얼굴 같았어요.”

그 할머니는 한 달 동안 아들을 심방해 준 은혜를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며 나와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매일 새벽마다 정부에서 극빈자에
게 배급되는 정부미를 정성스럽게 떼어 성미함 위에 놓고 간다.

그 할머니의 발길은 이십 년이 넘었다. 나를 만날 때마다 환하게 웃으시며 내 손을 꼭 잡는 그 할머니는 아들이 천국에 간 것이 얼마나 기쁜지 어린 손자들을 기르며 살아가는 삶이 조금도 힘들지 않다고 하셨다.

그리고 더 놀라운 열매는 아버지가 천국 가는 것을 지켜본 어린 아들 둘 모두 그 날부터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주님의 신실한 종으로
일하고 있다.

유정옥 사모님의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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