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베드로전서 1장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여러분은 거룩하기를 원하십니까? 거룩이란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당신을 닮으라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성도 중에 진심으로 거룩을 소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가지고 싶어도 그 고난은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16절에 “기록되었으되”라고 말한 것은 레위기 11장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레위기와 베드로전서는 똑같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말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와 베드로전서는 똑같이 거룩해지는 것을 더러워지지 않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피로 깨끗이 씼은 후에는 다시 더러워지지 않도록 힘쓰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러워지지 않는 방법은 완전히 다릅니다.

레위기는 부정한 짐승을 만지거나 먹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반면에 베드로전서는 사욕을 따르지 말고 근신하여 모든 행실에 거룩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두 차이는 어제 생각해 보았던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구약시대에 피로 죄를 씻는 것은 육체의 예법에 불과하다고 히브리서 9장에서 말씀합니다. 하지만 신약시대는 다릅니다.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영혼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거룩은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가졌던 생각 중에 가장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또 많은 성도님들도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이라는 것을 너무 신비하게 생각한 나머지 자기 힘으로는 영혼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심판하시는 것은 공의롭지 못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주님의 피가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진리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묵상해보면 죄를 씻은 후에 영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행실을 거룩하게 하려고 힘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의 사욕을 다스려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부정한 짐승을 먹거나 만지면 더러워졌습니다. 반면에 신약시대에는 더러운 사욕을 품으면 마음이 더러워지고 결국 그것은 말이나 행실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실만 조심하면 된다고 믿지만 마음에 품은 것은 결국 입으로 나오고 행실로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부터 다스려야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처음에 질문한 대로 거룩해지려는 열망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죄사함은 거저 받지만 거룩해지려면 값을 치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값은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오직 주님을 닮으려고 온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결단만 한다고 해서 마음에서 아무런 욕심이 올라오지 않는 것이 아니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욕심이 올라올 때 그것을 버리려고 한다고 해서 쓰레기통에 종이를 버리듯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거룩해지는 것은 큰 싸움입니다.

주먹의 싸움이라면 상대방의 주먹을 맞으면 아프겠다는 두려움이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싸움은 마치 당뇨병에 걸려서 그동안 맛있게 먹던 음식을 갑자기 멀리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예수님을 알기까지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던 것들을 내 영혼을 더럽히는 것들로 여기고 싸워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는 치열하게 싸우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항상 기도하실 만큼 무서운 싸움을 싸우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라도 거룩을 위해 싸우셨고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여 그 싸움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거룩하기 위하여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 만큼 거룩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닮아 거룩한 만큼 그 영광에도 가까이 가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거룩이 단순히 믿는다고 주장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거룩하고 삶이 거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기 마음을 거룩하게 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생각부터 주님을 닮으려고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많은 생각들을 만약 주님이시라면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 말씀과 비교하며 고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고 성경을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거룩은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지위 때문에 할 수 없이 언행을 삼갑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존경을 바라고 거룩한 삶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면 진짜 거룩은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을 닮기 원하는 간절한 소망 때문에 거룩하기를 힘쓰는 것이야 말로 이 땅과 하늘 나라에서 참된 축복이 될 것입니다. 사랑으로 거룩해지는 기쁨의 축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주님 사랑해서 고난이 있더라도 기쁨으로 주님을 닮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소서
  2. 거룩의 싸움을 가볍게 보지 않게 하시고 진지하게 임하는 믿음의 용사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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