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나님의 사람아!

결혼하고 보니 시댁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어디 그 뿐인가. 나는 종갓집 맏며느리였다. 어머니는 제사 날짜가 까맣게 적혀 있는 종이를 내밀며 내가 시집와서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제사라고 하였다.

“어머니! 저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제사를 드릴 수 없어요. 제기도 만질 수 없고 제물도 만들 수 없어요. 그러나 제사는 안 지내지만 제삿날이 아닌 다른 모든 날들은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진심을 다하여 남편과 부모님을 섬기겠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제사 일을 빼고는 다른 것은 마음에 흡족하다면서 내 의견을 들어 주었지만 친척들은 사업이 망한다든지 가족 중에 누가 병이라도 나 면 종갓집에 예수 믿는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액이 꼈다면서 그 근원을 나에게 돌렸다.

심지어 우리 집안이 망하지 않으려면 이혼을 시켜야 한다고까지 했다. 어머니는 속상해서 나를 달래도 보고 애원도 하고 야단도 쳐보셨지만 아무 효험이 없자 지쳐서 포기하셨다.

“너는 여자니까 제사에서 빼 줄 테니 우리 집 장손은 조상님께 절을 잘 하게 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제사 드리는 것을 가르쳐라.”

시댁식구들이 이렇게 단단히 벼르고 있는 가운데 첫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나는 아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첫 돌 때부터 성경을 가르쳤다. 나는 아들에게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사는 법은 성경 말씀을 생명처럼 지키며 사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모세의 부모는 만약 이들을 낳으면 하수에 버리라는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아들을 낳은 후 죽이지 않고 숨겨서 기른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나면서 더 이상 아기를 숨겨서 기를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강에 띄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찌 이런 무모한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갈대 상자가 바람에 기우뚱하기만 하면 아기가 물 속으로 빠지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날 일이고, 모세를 발견한 사람이 히브리 아이라고 군인들에게 신고하거나 아기를 주워 가지 않는다면 아주 작은 실수에도 아기가 죽게 되는데….

사람의 하는 일이란 이렇게 무모하고 어설프고 위험천만하다. 그러나 주님은 그 부족한 행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행하였다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모세의 어머니의 어설픈 행동에도 하나님의 한 치 오차도 없는 도우심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모세의 어머니는 그의 유모가 되어 애굽에서 가장 안전한 왕궁에서 자기 아들을 기르게 된다. 모세의 어머니는 어떤 심정으로 아들을 교육시켰을까? 모세가 젖을 뗄 때까지만 키울 수 있었으니 네 살 이전에 끝내야 하는 아들의 교육을 온통 하나님을 가르치는데 쓰지 않았을까?

나 역시 모세의 어머니와 같은 절실한 심정이 되었다.
아들이 다섯 살 되던 해 설날 아침이었다. 어린 아들은 설날 아침이 신나고 즐겁지 않은 모양이다. 설빔을 입혀줘도 좋아하지 않고 묻는다.

“엄마! 어떻게 해야 제사 때 절을 안 할 수 있을까요?”

제사상이 차려지고 문중의 남자들이 방안에 가득했다. 이제 제사가 시작 되려나 보다 하고 조마조마 하고 있는데 누군가 외쳤다.

“아니, 우리 문중의 장손이 어디 갔지? 안 보이잖아요. 어디 가서 숨어 있나 봅니다. 우리 다 같이 나가서 장손을 찾아옵시다.”

어른들만 절을 해도 자리가 비좁을 정도로 많은데 다섯 살짜리 아이 하나 없어졌다고 동네를 발칵 뒤집어 찾아 나서다니……. 아들이 제발 발각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러나 아들은 멀리 도망도 못 가고 슈퍼마켓 옆 나무 옆에 숨어 있다가 결국 어른들의 손에 끌려와 제사상 앞에 세워졌다. 삼촌 둘이 억지로 아들의 머리를 눌러 절하게 하자 아들은 소리쳤다.

“하나님! 나 절하는 것 아니에요. 하나님! 나 절하는 것 아니에요. 삼촌들이 목을 눌러서 어쩔 수 없이 숙여진 거예요. 하나님! 나는 어른이 되면 이 제사를 없앨 거예요. 설날에 하나님께 예배드릴 거예요.”

아들은 발버둥 치면서 엉엉 울었다.

그 이들은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애굽과 갈은 생활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자라서 목회자가 되었다. 지금은 설날이 되면 문중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예배를 인도한다.

삼십 년 전 아들의 목을 눌러 억지로 절을 시키던 숙부님은 이젠 장로님이 되었다. 설날이면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로 가득 찬 우리 집안은 이제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집안이 되었다.

“생명을 내 놔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거든 기꺼이 생명을 내놓아라. 집안이 구순하자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서 제사 지내지 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이 세상에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을 다해 지키려 한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너를 지켜주실 것이다. 내 딸아!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집으로 시집가던 날, 나의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눈물로 당부하신 말씀이었다.

유정옥 사모님의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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