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앞에서 쫓아내라
출애굽기 23장 27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29 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30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31 내가 네 경계를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32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33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려는 계획을 보면 너무나 세심합니다. 사람이 생각하지 못할 부분까지 생각하시고 단계별로 이루어 나가십니다.
우선 왕벌을 보내셔서 그 땅의 백성들을 쫓아 내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실 때 이스라엘이 정복하는 속도보다 그 땅의 사람들이 더 빨리 없어지면 들짐승들이 많아져서 나중에 이스라엘이 들어와서 힘들까봐 이스라엘의 행보에 맞추어 적당히 쫓아내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할 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남은 원주민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면 그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가족을 쫓아내라는 것도 아닌 이 명령을 이행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멸망했습니까? 우상 때문이었습니다. 왕이 없을 때에도 평안한 시대가 조금만 길어지면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솔로몬이 우상을 섬겨서 나라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시작부터 우상을 섬겼습니다.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성전을 그리워해서 유다로 돌아갈까봐 가짜 성전을 만들어 놓고 금송아지를 세웠습니다. 끝까지 그렇게 하다가 시리아에게 멸망했습니다. 남왕국 유다도 므낫세의 우상숭배 때문에 바벨론에게 멸망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들이 섬긴 우상이 어디서 온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우상들은 이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이 섬기던 것들이었습니다. 유행이라는 것은 반드시 시작이 있습니다. 누군가 시작해야 그것이 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약 누군가 우상을 섬기자고 유혹하거든 그 사람이 네 품의 아내라 할지라도 불쌍히 여기지 말고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절대로 심한 말이 아닌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은 반드시 멸망하는 일이고 자기만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를 다 멸망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명령하시기를 그 땅의 거민들을 다 내어 쫓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우상숭배자들과 공존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같이 우상숭배하고 멸망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을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가나안 원주민들과 함께 거주하게 된 이스라엘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이 농사, 출산 등 당시 생활에 아주 중요한 문제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바알은 농경을 풍요롭게 해주는 신이고 아데미는 다산의 신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신들은 거룩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제물만 바치면 성적인 타락, 탐욕과 거짓과 같은 죄들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점점 미혹되어 가나안 거민들과 함께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그리고 멸망합니다. 처음에 기회가 있을 때 쫓아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역으로 삼켜져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14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이스라엘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가나안 여성이나 남성을 보고 이성으로 반해서 결혼을 했을 것입니다. 그 중에 땅이 많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사업을 한 사람도 있었고 솔로몬처럼 아예 이방여인들과 정략적으로 결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멍에를 같이 메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는 것을 봅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동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탐욕에 물들어 같이 거짓말을 하게 되고 옳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게 되기도 합니다.
저도 한국에 갈 때 예전 친구들과 만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 명씩 만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어도 여럿이 함께 모이면 복음을 전하기는 커녕 오히려 제 옛사람의 기억들이 되살아나 유혹당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살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과 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세상의 것은 과감하게 끊어야 합니다.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관계까지 하나님 안에서 다시 세워야 합니다. 경제생활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이 바로 서지 않으면 발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자꾸 어딘가에서 막힌다면 그것들이 뭔지 냉정하게 생각하고 그 원인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잠시 불편할 뿐 결국은 그들 중 여러 사람의 영혼까지 구원하는 더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없어서 손해볼 것은 영생 밖에 없습니다.
오직 믿음을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새로 정리하시고 특히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멘 멍에들이 있다면 과감히 끊어 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을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관계들을 다시 세우게 하소서
2. 끊어야 할 관계들은 과감하게 끊을 수 있는 지혜와 결단력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