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나님의 일을 알리요
사도행전 8장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이스라엘은 주전 600년 남유다의 멸망 이후로는 나라 없이 오랜 시간을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셨지만 이천 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에 다시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19세기 후반부터 자기들의 옛 영토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또 20세기 초에 벤 예후다라는 사람을 통해 현대 히브리어가 복원되는 등 이스라엘의 재건을 위한 작업이 하나씩 진행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그 땅으로 이주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유럽과 미주 등지에 둥지를 튼 사람들이 척박한 땅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는 것이었죠.
그 때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히틀러와 나치가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특히 유대인과 철천지 원수를 맺은 사람처럼 육백만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에 자기 나라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유대인들이 대거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린 끝에 1948년 드디어 성경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이 그 땅에 다시 건국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2차 세계 대전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도 이와 같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가장 사랑받던 젊은 지도자인 그가 죽을 때, 그의 인생과 사역이 다 끝나는 것 같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신 것처럼 그의 죽음도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후 스데반이 죽을 때까지 예루살렘에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 예루살렘 교회 성도의 추정인원이 오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많은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했고, 가진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의 재물까지 내놓았으니,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교회가 얼마나 천국 같았겠습니까? 이들은 그대로 주님 오실 때까지 기다리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스데반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죽는 첫 제물로 삼으시면서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셨고, 그들은 사방으로 퍼져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통해서 그분의 뜻을 이루십니다. 분명히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잔인하신 분이라고 원망하겠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알게 되면 감사와 경탄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부족한 것 없이 백 년을 넘게 행복하게 살게 해주시고 그들이 죽은 후에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하신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습니다.
이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구원이라는 또 다른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찬성표를 던지고 돌 던지는 사람들이 벗어놓은 옷을 지키던 사울이라는 바리새인 청년이었습니다.
어제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들 드렸는데 사울은 분명히 그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4장에 등장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율법사 가말리엘의 제자였으니 스데반의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리 없습니다.
아시는 대로 이 청년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유대교와 이슬람에서는 바울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더 굳게 세우셨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로마서 11장 33절)
인생의 고난을 지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고난 중에 절망하지 마시고 형통하는 중이라고 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지나고서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끝난 후에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실 주님만 바라보고 오늘을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