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렙돈 vs 영원한 보화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오늘의 본문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낙타와 바늘귀에 관한 말씀과 더불어 우리에게 물질적인 면에서 가장 큰 부담을 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을 때 어떻게 해석을 하십니까? 아마 어느 순간에 해석하려는 생각조차 그치게 된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처음 은혜 받고 마음에 들어온 감동들을 순종하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순종했다고 스스로를 속이거나, 눈으로는 읽으면서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도 해보지 않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메세지는 분명합니다. 주님의 일에 물질을 사용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액수가 아니라 정말로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며 이 과부가 한 일이 그 훌륭한 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들이 거지 행색을 하고 살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거지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주님 나라에서 가장 큰 부자들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하늘나라에서는 가난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에 반박하는 마음이 드시는 분이 있겠지만 성경을 가지고 증거를 찾아서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가 이것 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큰 이익이 확실히 보장된 사업이라는 것을 믿는 증거는 최선을 다한 투자입니다. 그것이 바로 밭에 뭍힌 보화의 비유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과부가 전 재산을 넣은 이유, 사도들을 비롯한 믿음의 사람들이 소유를 멀리하고 주님의 일에 삶을 바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하늘 나라가 현실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것은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극단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인 것이 위험한 이유는 그 결과가 극단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이라는 결과보다 극단적일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마음을 닫고 읽어서 그렇지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물질에 관해서 하신 말씀을 찾으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좇는 이야기 다음으로 많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좇는 것은 주님이 능력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었지만 물질을 포기하고 투자하는 것은 오롯이 사람의 선택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모든 물질을 포기하면서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명령부터 회개하고 순종하기 시작해서 결국은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하늘에 쌓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굶게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설사 굶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한 끼 한 끼가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하늘에 쌓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도 많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을 뿐이고 보고 싶지도 않을 뿐입니다.
눈과 마음에 덮인 수건을 벗어버려야만 보이는 길이 바로 주님 가신 좁고 험한 생명의 길입니다.
1. 소유에 담백한 마음을 주소서
2. 주님의 일이 보화로 보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