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둔해지게 내버려 두지 말라
마가복음 6장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어제는 마음이 완고해지는 것에 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마음이 둔해지는 것에 관해서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의 마음이 둔해졌다고 말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또 하나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다를 육지처럼 걸어오신 이 일이 있기 하루 전에 주님께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다른 복음서에 보면 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누룩(교훈)에 대해 주의하라고 하셨을 때 자기들이 떡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는데 예수님과 열두 제자, 도합 열세 명이 먹을 것을 여전히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믿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미련함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죽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뒤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장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한 것일 겁니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어도 그 때까지 먹고는 살았기 때문입니다. 걱정해서 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거지요.
우리가 예수님 믿은 후의 인생을 돌아보면 그동안 주님께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셨다는 것을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억이 하루 이틀치가 아니라 십 년 단위로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이 둔하여진 것입니다. 정말 억울해 해야 할 것은 걱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 걱정 때문에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씨뿌리는 비유에서 생활의 염려를 가시덤불이라고 하셨습니다. 걱정한 만큼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갈 열매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먹고 사는 걱정에 대해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이 말씀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바로 요즘일 것입니다. 물가상승이 얼마나 가파른지 날마다 먹는 것들 중에 크게는 두 배까지 오른 것들도 있습니다. 아마 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안해지는 느낌을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여지껏 우리 인생에 공급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또 미국에 사는 우리가 어려우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얼마나 괴로울지를 생각하십시오. 이 생각들을 가지고 주님께 기도하면 이 걱정들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이 둔해졌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때까지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이적 뿐 아니라 병든 자를 고치시고 군대 귀신이 들렸던 자를 온전하게 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신 것까지 보았으면서도 예수께서 바다를 걸으시니 또 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충분한 증거들을 가지고도 깨닫지 못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합니다.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가 물위를 걸으시는 것에 또 놀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삶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잊어버리고 또 하나님을 우리 생각 속에 가두어 둡니다.
그 많은 하나님의 일들을 다 묵상하며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죄를 사하신 것입니다. 모든 초자연적인 이적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천국의 문을 여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세상걱정을 다 이겼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병을 고치시고 바람을 잠잠하게 하시는 것은 말씀 한 마디로 하셨지만 우리의 죄를 사하실 때에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질 때는 자기의 부족함이나 세상 염려 때문에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사함의 은혜를 의심할 때입니다.
언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원수로 행할 때였습니다.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몸소 우리가 받을 죄의 값을 치루셔서 구원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주님을 의심하고 두려워해서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가지 못합니다. 또 이와 반대로 주님의 공로보다 자기의 행위가 더 높아져서 은혜를 가리기도 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지를 의심하거나 염려하지 맙시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할 마음이 없는 것이지 아들을 십자가에 주신 이가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안에 정말 주님을 따르려는 마음이 있는지를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됩니다. 감사를 넘어 황송해야 합니다. 그 생명을 주실 때에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면 언제나 감사와 찬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증거하고 높여야 합니다.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깨어있도록 힘씁시다. 십자가 고난을 통해 나를 구원하신 은혜와, 그 은혜를 받은 후에도 복음에 합당하게 살지 못한 나를 버리지 않으신 주님의 사랑이 항상 내 마음을 감동할 수 있도록 합시다.
믿은 후에도 부족한 삶으로 주님의 영광을 가린 우리가 여지껏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이야말로 이적 중의 이적입니다. 어제까지 그 이적을 행하신 주님의 은혜를 의심하지 않고, 또 당연하게 여기지도 않으면서 그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오늘도 승리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님께서 내 삶에 이미 이루신 일을 기억하고 같은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 주님께서 이루신 일들의 오직 한 가지 이유, 영원한 생명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