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청결한 자 – 마5:1-12

마태복음 5장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먼저 하나님을 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고 만유보다 크시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18)

이것은 공식으로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본다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땅에서 예수님을 그 눈으로 보았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스데반입니다. 요한과 바울도 주님을 만났다고 하지만 그들은 하늘에 올라가서 주님을 뵈었고 스데반은 땅에서 하늘에 계신 주님을 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돌로 맞기 전에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할 때의 스데반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청결한 상태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거짓 증언 때문에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유대인들의 하나님께 대한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했고 마지막에는 그들이 목이 곧아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책망했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고 유대인들의 양심을 찔렀는지 듣는 사람이 이를 갈 정도였으며 스데반이 주님을 본다고 할 때에는 자기들도 그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귀를 막고 달려들어 스데반을 돌로 쳤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믿었고, 살았고,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종교재판은 죽을 수도 있는 두려운 자리였지만 그는 성령 충만해서 주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청결한 상태입니다. 그 마음이 세상의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살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신 고 옥한흠 목사님은 은퇴한 후에 한 설교에서 자신이 교회 운영을 핑계로 강단에서 사람들과 타협하는 설교를 한 일이 많았다고 회개했습니다.

존경받는 목사님도 이러니 성도들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인간관계나 물질 때문에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변역하는 일이 정말로 많습니다. 영생이 있다고 믿을수록 우리 삶에는 버릴 것이 더 많아지지만 믿는 사람도 대부분 더 가지려고 하지 버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세상에 더 얽매이는 것은 주님과 우리 사이에 쌓인 담을 더 두껍고 높이 쌓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뵙는 것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것입니다. 뭐라고 그럴듯하게 핑계를 대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똑같은 것을 추구하며 살면서 거기에 예수님만 더한다고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를 뵙는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을 때에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부르짖은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돌아보았을 때 그 부족함을 보고 심령이 상하여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 심령이 가난한 것입니다. 그 심령에 애통함이 임하고, 애통이 온유함을 만들고, 의의 주리고 목마르게 만들며,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팔복은 여덟가지 다른 복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유기적인 복입니다.

이 복들이 우리 심령에 임하고 마음이 온전히 청결해서 주님을 뵈올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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