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로이드 존스의 ‘산상설교’ 중에서
저는 성경에서 가장 큰 덕목으로 간주되는 것, 즉 겸손을 올바로 평가하지 못하는 경향을 가끔 봅니다. 저는 언젠가 어떤 위원회의 사람들이 어떤 후보자에 대하여 “네,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그는 개성이 부족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는데, 내 견해에 의하면 그 사람은 겸손했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도전과 자신감을 격려하고 높이며, 자기와 자기 자신의 개성을 이용하며 개성을 나타내려 애쓰면 끔찍하게도 ‘개성을 인정받으려’ 애를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사역과 관련해서 사용되고 있는 광고도 점차 이런 경향을 매우 크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일꾼들과 위대한 전도자들의 활동기록을 보십시오.
그들이 얼마나 표면에 나서지 않는가를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에는 이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날(1950년대)에는 사역에 관한 광고와 사진들이 표면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함이 아니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가 고린도에 갔을 때 그는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2:3)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지고 속편한 마음으로 강단에 올라서지 않았으며, 큰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도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외모가 보잘것없고 말이 시원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와 귀감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까? 교회가 세상과 세상의 방법으로 생활에 영향을 받게끔 허용하는 것은 얼마나 비극입니까!
무엇보다도 이 세상 심리에 유혹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 속하는 어느 것과도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분명히 하십시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만심이 없으며 자신과 자기 의존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의식을 의미합니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마주 대할 때에 느끼는 우리의 철저한 무능에 대한 이 엄청난 인식입니다. 이것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산상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