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지혜 듣는 지혜

잠언 11장 11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잠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에 관한 말 다음으로 많이 다루는 것이 사람의 말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모든 것 중에 말처럼 큰 능력을 가진 것이 없습니다.

말때문에 사람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심지어 성읍 하나가 말 때문에 흥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말의 힘은 무섭습니다.

말이 상처를 주는 것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민족마다 맛을 느끼는 방식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맛있어 하는 김치나 청국장으로 미국 사람을 대접하는 것은 고문에 가깝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 자기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모릅니다.

같은 맥락에서 남이 관심을 가질 말인지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고 자기 관심사만 계속 이야기하는 일도 있습니다.

특히 자기 가족에 관한 얘기는 자기가 느끼는 것에 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거리도 감동거리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얘기만큼 사람들이 열을 올리는 얘기도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도 가끔 그렇게 열을 올려가며 이야기를 하고 저녁에 후회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기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자기가 한 말들 때문에 온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어도 자기는 교양과 위로와 생명의 말을 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위로의 말 열 마디를 하고 권면의 말 한 마디를 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심지어 내가 낳은 자식도 어느 정도 자기 주관이 서면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어떤 말에는 크게 상처를 받습니다.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어떤 일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황금률’ 이라고 불립니다. 말도 그렇지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듣고 싶어하는 내용과 딱 좋을 만큼만 말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게 말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지혜로운 말은 사람을 사랑해서 살리려고 하는 말들입니다. 어릴 때는 잔소리로만 들리던 부모님의 말씀이 지금 생각해 보면 틀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 때 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그 내용도 그립지만 더 그리운 것은 부모님 말씀 안에 담겨있던 사랑입니다. 세상에서는 부모님 만큼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귀한 성도는 부모의 사랑보다 귀한 하나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야 말로 투박하고 잔소리 같아도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침마다 말을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듣는 사람을 사랑해서 그 마음을 헤아리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계신 분들은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남의 어려움을 떠 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지고 계신 관심까지 함께 받는 사람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실까요? 그들을 항상 생각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되면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구제하는 사역을 하는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그냥 쓰고 남는 것으로 구제하는 분들 말고 아예 자기 인생을 걸고 사람들을 구제하는 분들 말입니다.

그런 분들의 간증에 공통적으로 있는 내용은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나중에는 그들을 다 살릴 수 있는 길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물질의 풍족함을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열 명의 자녀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어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겠습니까? 나머지 자녀를 책임지고 돌볼 자녀 아니겠습니까?

십자가는 단순히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어려움을 같이 짊어지는 것이 십자가이고 그 길에 고통이 따르는 것이지 고통 자체가 십자가의 목적은 아닙니다.

날마다 자기 문제만 가지고 우는 사람은 그 눈을 남에게 돌리기 전까지는 아무리 앞으로 걸어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남을 위해 울 수 있는 것이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그 마음으로 구제하고 남을 윤택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주님의 종인 것입니다.

12: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날마다 읽고 듣는 주의 말씀들이 자기에게 하시는 훈계로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치시기 위하여 허락하시는 징계를 달게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짐승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자신을 고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의 생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훈계를 무시하면 그것이 바로 짐승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가장 큰 복을 받은 것이 우리 사람입니다. 하지만 훈계를 멸시하면 짐승으로 마칠 수도 있습니다. 날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스스로를 쳐서 복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가장 지혜롭고 아름답게 말할 수 있는 사랑을 우리 안에 주소서
  2. 어려움 당하는 사람을 도와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게 하소서
  3. 훈계를 들을 수 있는 열린 귀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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