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에 대해 – 마 5:33-37
마태복음 5장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맹세는 모든 나라에서 다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별의 별 걸 다 들이대면서 맹세를 하는데 미국에 와보니 한국보다 더 심하게 맹세를 남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맹세를 하는 사람들을 잘 보면 대부분 평소에 신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에게 신용을 얻은 사람은 맹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기 말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이 없더라도, 이미 맹세란 자기가 죄인이고 자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맹세라는 행위 자체가 이미 죄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신용 없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한 사람이라도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자기가 분명히 진실하게 한 말이라도 그 내용자체가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커피가 몸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결과는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관련된 기사를 읽고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진실성과 상관없이 거짓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신문에서 읽은 내용이라고 밝히면서 말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혹시라도 그 말에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때 버릇대로 “내가 맹세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또 어떤 약속을 하면서 맹세를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을 꾸고 언제까지 갚는다고 맹세를 하는 것 같은 일입니다. 돈이 없어서 돈을 꾸는 사람이 반드시 갚는다고 맹세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연약합니다. 현재의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미래의 일은 더더욱 모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 죽겠다고 했을 때 주님께서 맹세하냐고 물으셨으면 아마 베드로는 그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 순간에는 사실이었으니까요?
주님께서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맹세는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세상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주관하시는데 자기가 뭔가를 아는 것처럼, 또는 자기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장담하는 행위가 맹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교만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맹세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기가 아는 것이 옿다고 우기는 행위, 또는 자기가 앞으로 무엇인가를 이뤄낼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도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무엇인 진리인지 오직 성경을 통해 탐사하는 일입니다. 때때로 저는 혼자서 성경을 생각하다가 굉장히 신선하고 은혜로운 설교의 내용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성경본문을 펼치고 그것을 원어와 영어로 비교했을 때 제가 생각한 방향으로 설교를 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신선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일수록 더합니다. “어차피 성도들은 모를텐데 그냥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닌 것을 전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너희는 오직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때로는 그저 대화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 성경으로 증명하지 못할 것을 우기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으로 쉽게 증명하지 못할 것이라면 그것은 그저 자기의 생각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둘째, 자기의 취향을 진리인 것처럼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에도 어떤 사람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것을 지향합니다. 한 때는 꽤 진보적이었지만 오랫동안 해왔던 일들은 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목회를 해보고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며 이런 저런 고민을 해보니 이전의 목사님들이 저보다 부족해서 그런 전통을 세웠거나 지켜왔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님을 알아갈수록 “저는 모릅니다 주님만 아십니다. 저는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만 모든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겸손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만이 세상에서 가장 길들이기 어렵다는 혀를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