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것인가 안 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안 하는 것인가(무능력인가 불순종인가)

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오늘의 본문을 머리속으로 상상하면 참 끔찍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요한이 참수를 당하는 장면도 그렇지만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헤로디아의 딸에게 준 것이나 그녀가 그 것을 가지고 자기 어미에게 가지고 가서 전해 준 것을 상상하면 역하고 공포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헤롯이 그 때까지 요한을 죽이지 못한 것은 그 일이 끔찍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이기게 만든 것은 다름이 아닌 자기 체면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헤롯의 마음을 파헤쳐 보며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옭아매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본성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믿는 우리에게는 이것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분석해 보고 말씀을 가지고 그것과 싸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헤롯이 두려워한 것은 자기의 지위를 잃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랬다가 자기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가진 두려움도 비슷합니다. 분명히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렇게 하려고 하면 잃을까봐 두려워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재물을 읽을까 두려워합니다. 실제로 주님을 따르는 삶에는 물질의 손해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순종하는 대상이 누군지 알면 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농부는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종자는 먹지 않고 남겨 두었다가 봄이 오면 땅에 뿌립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뿌리는 땅을 알기 때문입니다. 씨를 땅에 뿌리는 것을 버린다고 생각하는 농부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순종하기 위해서 손해보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심는 것입니다. 그 순종의 대상이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재물의 손해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관계를 잃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천히 여김을 받을까 두렵고,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떠날까봐 두려운 것이지요. 하나님 뜻대로 살면 반드시 이런 일이 있습니다.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복음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는데 너희일까보냐” 라고 하셨고 “사람의 원수가 집안식구리라” 라고 말씀하심으로 이런 일들이 그냥 일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거센 파도처럼 밀려온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봅시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관계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세우는 것입니다. 남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으려는 인간관계에서 겸손히 낮아지고 섬기는 관계로 세우는 것입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예전에 함께 주님을 대적하던 가족에서 잠시 어려움이 있더라도 같이 구원받아 주님을 섬기는 가족을 새로 세우는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암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서 살을 찢고 장기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과 같이 반드시 필요한 아픔입니다.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부딪혀 작은 싸움이라도 싸우면 내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도우심으로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매일의 삶에 재물의 두려움, 관계의 두려움을 말씀으로 싸워 이겨내는 승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헤롯에게는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체면이었습니다. 자기 조카이면서 수양 딸이 생일에 그를 흡족하게 하는 춤을 추었습니다. 호탕하게 뭐든지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사람들이 앞에서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이 여자아이가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는 겁니다.

헤롯의 안에서 두려움과 체면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반발은 나중 일이고 당장 사람들 앞에서 한 말을 어기려고 하니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두려움보다 체면이 더 중요했기에 사람을 시켜 요한의 목을 베어 가져오게 합니다.

이 헤롯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 우리 믿음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보다 체면이 더 중요한 면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지난 주일에 헌금한 사람들의 명단을 주보에 올린다고 합니다. 그래도 가나다 순으로 올리는 교회는 좀 낫습니다. 어떤 교회는 헌금액수가 많은 순서대로 올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던 교회가 그것을 멈추었더니 헌금액수가 수직낙하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특정한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달라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목회자와 있을 때와 성도들과 있을 때가 다른 사람이 있고, 집에서와 교회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차이가 심할수록 초신자들과 자녀들이 믿음을 떠나고 기독교 신앙을 혐오하게 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볼 때 하는 것을 보이지 않을 때는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무능력이 아니라 불순종이라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은 무능력이든 불순종이든 진실하기만 하다면 살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마음에는 원인데 육신이 약한 무능력이라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약함 가운데 주님이 강하여지시는 비결입니다.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고백하며 나가면 됩니다.

불순종이라면 십자가 앞에 나아가 그 불순종을 인정하고 사람들 앞에서도 외식하지 않고 자기 죄를 고백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용서와 도움을 받아 삶이 변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미워하신 것은 그들이 죄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외식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진실하여 무능력한 자도 불순종한 자도 새롭게 하시는 복음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말씀으로 삶의 두려움을 이기는 지혜와 믿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2.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실하여 그 넘어짐과 일어섬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는 성도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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