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건네주고 있는가?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생이던 때부터 나를 새벽기도에 데리고 나갔다. 그 시절 겨울에는 왜 그리도 눈이 많이 왔는지 장화 속으로 넘쳐 들어오는 차가운 눈은 나의 단잠을 깨웠다. 어린 나는 어머니께 투정부리듯 물었다.

“엄마! 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 많은데, 왜 가장 어린 나를 새벽기도에 데리고 다니는 거지요?”

“너는 일평생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주님이 너를 부르는 그 시간 까지 새벽기도를 해야 하니 어려서부터 기도에 힘써야 한다.”

그렇게 나는 새벽마다 어머니의 손에 붙들려 새벽기도에 갔고, 어머니는 모든 성도들이 집으로 다 돌아가고 교회의 난롯불이 싸늘하게 사위어 갈 때까지 눈물로 기도하셨다.

어머니는 평생동안 나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건네 주셨다. 그렇게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니 나는 죽어도 새벽기도 해야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입학한 인일여고는 당시 아침 6 시 40분에 첫 수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새벽기도에 갔다가 학교에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학교 게시판에 “3월 5일부터 무용실 앞에서 새벽기도 있음”이라고 써 불였다.

“한 명도 안 나오면 나 혼자 하지 뭐.”

그렇게 마음먹고 나간 첫 날, 세 명이 모이고 대여섯 명으로 늘더니 어느 날은 열 명이 모이기도 했다. 우리들은 그네가 매여 있는 무용실 앞 산자락에서 새벽기도를 하고 도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수업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학교의 새벽기도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져 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첫 날 우리들은 흔들바위와 울산바위를 다녀오느라 얼마나 피곤한지 녹초가 되었다. 수학여행까지 왔으니 내일 새벽기도는 쉴까? 그냥 깊은 잠에 떨어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고, 친구들과 밤이 늦도록 놀고 싶은 유혹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러나 이내 모든 유혹을 떨쳐버리고 서울 여관 대문에 이렇게 써 붙였다.

“내일 새벽기도는 여관 앞 개울에서 새벽 5시에 있음.”

이렇게 수학여행 기간에도 새벽 기도를 쉬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삼십 년이 훨씬 지난 후에 동기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때 〇〇교회의 사모인 경숙이가 나에게 물었다.

“정옥아! 너 고등학교 때 ‘예수 열성당’이었던 것 생각나니? 나는 그 때 이미 네가 앞으로 무슨 일이든 큰 일 저지를 줄 알았어. 네가 설악산으로 수학 여행 가서도 새벽기도 인도했잖아. 그 때 나도 새벽에 나갔는데 그 날 굽이쳐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우리들의 찬양소리에 묻혀버렸지. 그 날 열여덟 명이나 개울가 새벽기도에 나온 것 알고 있니? 그 친구들이 지금은 교회 목회자 사모들이 되었잖아.”

나는 경숙이의 말을 들으며 그 날 그 개울가에서 부르던 ‘시온의 영광이 빛 나는 아침’ 찬양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주님은 삼십 년이 지나서도 그 날 드린 우리들의 기도가 열매 맺고 있음을 확인케 하셨다.

어느 날 한 장로님이 전화를했다. “사모님! 이번에 전국장로 연합회를 설악산에서 하게 되었는데 모처럼 설악산에 모였으니 새벽기도는 생략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지요. 그

러나 저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인일여고 학생들이 설악산 수학여행지에 가서도 새벽기도를 했다는 글을 보았으니 양심이 찔려서 동의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미움을 받을 각오를 하고 그 내용 을 말했더니 장로님들이 ‘고등학교 여학생들조차 수학여행 와서도 새벽기도 를 했는데 장로들이 이 모양이었으니 어떡하느냐고 회개하고 전원 새벽기도를 하게 되었어요. 당연히 그 날 새벽 기도는 은혜 충만, 성령 충만이었음은 말 할 것도 없지요.”

어느 날 나는 이런 전화를 받았다.“정옥아! 나 윤석란이야. 너 나 기억하니? 인일여고 다닐 때 내가 너를 피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은 줄 아니? 수업시간만 끝나면 나를 붙들고 예수 믿으라고 따라 다녔잖아. 점심시간에 겨우 따돌렸다 싶으면 하교 시간에 또 나를 졸졸 따라 다니며 예수 믿으라고 했지.

너의 끈질긴 전도 덕분에 내가 예수를 믿게 됐고 목사에게 시집가서 지금은 러시아 선교사로 일하고 있어. 그 때는 학교에서 너를 만나는 것이 귀찮고 싫었는데 지금은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너의 이름을 전한단다. 나에게 예수를 전해줘서 내 인생을 바꿔 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정옥아! 내가 너를 멀리 하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를 전도해 줘서 정말 고마워!” 삼십 년 후에 이 전화를 받으며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여 걸음을 멈추고 서서 한없이 울었다.

예수! 아무리 전해도 후회할 것이 없는 이름! 예수! 아무리 전해도 원망 받을 것이 없는 이름! 예수! 전하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이름!

우리 가슴에 예수! 그 이름이 있다는 것은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 큰 축복 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폐암으로 죽어가면서 자기에게 담배를 처음 건네준 사람이 바로 목사 아들이었다고 원망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 나는 그 사람에게 무엇을 건네주고 있는가?

유정옥 사모님의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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