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 가는 곳이 내가 섬기는 신입니다

호세아 2장 6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9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 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10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사랑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그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우상 숭배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바울은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탐욕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마음의 뿌리가 탐욕이기 때문에 우상에게 직접 절하지 않아도 탐욕을 따라 사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탐욕의 우리 말 사전적 의미는 ‘지나친 욕심’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헬라어의 원어적인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더” 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의 쓸 것을 아시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데 계속해서 더 가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탐욕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이스라엘이나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불신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충분하다” 고 하신 것을 부족하다고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말 것은 하나님께서 부유한 것을 죄로 여기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노력해서 정당한 방법으로 부유해지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신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부자는 자기를 위해 땅에 쌓아 놓기만 한 사람입니다.

부유한 성도는 물질 얻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 뜻에 맞게 물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를 만족시키는데 물질을 사용한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바로 허비입니다.

잘 아시는 요한 웨슬리는 다음과 같은 경제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열심히 벌어라. (Gain all as you can.)

이 말에는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하라는 전제가 달려 있습니다. 이 정당한 방법은 우선 주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을 포함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이 우선되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해도 정당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웨슬리는 세상에서는 괜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성경적 관점으로 볼 때 옳지 않 일은이라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당시에 농부들에게 토지를 빌려주고 농부들에게 세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시세가 오르더라도 농부들이 자기들이 일한 만큼 가지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일꾼의 품삯지불을 미루지 말고 저당잡힌 옷을 다음날까지 가지고 있지 말라는 성경의 말씀과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

쉽게 말해 돈을 위해 일하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느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중에 인색하고 부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혹시 내가 그런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는 않을지 자기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열심히 저축하라. (Save all as you can) 정당하게 벌은 돈을 열심히 저축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불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 시대는 과소비의 시대입니다. 부당하게 돈을 버는 것도 탐욕이지만 과소비도 탐욕의 열매입니다. 과한 것은 반드시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몸이 필요한 것보다 심하게 많이 먹으면 병이 걸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과소비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가 점점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면서 거기에 사는 성도들도 쉽게 넘어질 수 있는 시험입니다. 마치 소돔에 살던 롯과 같이 말입니다.

세째, 열심히 줘라 (Give all as you can)
돈을 벌고 저축하는 이유가 누가복음의 미련한 부자와 같이 쌓아 놓고 만족하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곳에 사용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웨슬리의 결론이기도 하지요.

진실한 성도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는 사람입니다. 통로에 적체가 생기면 제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성도가 탐욕에 넘어져서 육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그 삶에 쌓이기 시작하면 성도로서는 제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우상에게 절한 것과 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이든 재능이든 시간이든 건강이든 무엇이라도 의미 없이 쌓이지 않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탐욕의 결과라면 우리 영혼의 영원한 수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우리에게 배고픈 사람을 먹이라고 돈을 주셨는데 그것을 쌓아두고 있다가 주님 앞에 간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죄송하겠습니까?

혹시라고 내가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살았을 사람이 죽었다면요? 만약 그 사람이 조금만 더 살았다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을 수 있었다면요? 정신이 바짝 들지 않습니까?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썩어질 것에 낭비하지 말며, 하나님 기뻐하실 만한 곳에 물질을 사용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항상 하늘의 소망과 지혜를 구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자기 욕심을 만족시키려고 사는 우상숭배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2.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정당한 방법으로 일하며, 그 번 돈을 아름답게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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