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서 나오는 담력

히브리서 10장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창세기에 아담이 범죄한 순간을 보면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순간에도 그가 나와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얘기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아담이 죄를 짓는 그 순간에 아담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담력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뻔뻔함으로 자기를 숨겨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실함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진실함과 순수함이 없는 영혼은 하나님 앞에 절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신을 찢어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사람의 키보다 높은 휘장이 아래에서 위로 찢어지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찢으셨다는 것입니다.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벽과 같은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만 들어갈 수 있었던 진짜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지성소의 벽이 허물어 진 것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제 누구나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요즘 성소신앙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성소신앙이란 것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그 분과 교통하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까 아니면 성소에서 세상으로 나오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합니까? 다른 말로 하면 세상과 성소 중에 어디가 우리의 본거지입니까?

사실 우리 신앙생활의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과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 중에 어떤 것이 나의 신앙을 표현하는 말인가요?

많은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앙을 자랑거리로 여긴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명예나 자존심같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 특징 중 하나는 믿음의 문제를 지적하면 참지 못합니다. 그러면 성장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제가 대학교를 마치고 유학을 계획할 때 저희 선생님이 유학 가서 선생님 고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 노래를 듣고 칭찬만 해주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가지 말고 제 노래에 이런 저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주는 사람 중에 잘 생각해서 고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잠간 하고 말 노래를 가르치는 선생도 이렇게 고르는데 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자기 믿음이 지적 받는 것을 이렇게 싫어 할까요? 그것은 참된 성소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고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뵐 소망 하나로 사는 사람을 만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각자가 정말로 맑은 양심으로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보다 오늘도 이런 구역질 나도록 더러운 우리를 참으시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만나 주시는 그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감사하게 될겁니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 나는 남보다는 낫다는 생각 다 버리셔야 합니다. 내가 남보다 낫다면 삶의 열매로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아무리 은혜스러운 말을 할 줄 알고 옳은 신앙과 옳지 않은 신앙을 구분할 줄 알아도 겸손과 감사가 없다면 헛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이 휘장을 지나 성소로 나갈 수 있는 담력입니다. 정말 이 담력이 있는 믿음은 분명히 성도로 하여금 세상의 욕심을 내려 놓게 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라는 말씀 하나만 나누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9세기말 미국의 백화점 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워너 메이커는 교회의 장로님이었습니다. 워낙 성실하고 번뜩이는 지혜가 많았던 사람이어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벤자민 해리슨이 그를 체신부 장관에 임명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사업을 하던 그는 당연히 필라델피아의 교회를 섬겼는데 그의 직분은 주일학교 교장이었습니다. 그는 장관이 되어 워싱톤에 거주할 때에도 매주 토요일에 기차를 타고 내려와 주일에 교회를 섬기고 저녁에 다시 기차를 타고 워싱톤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100년전까지 가지 않더라도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나라는 예배에 나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던 성도들의 이야기가 흔한 간증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온라인 예배가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 이미 TV로 예배를 드린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인터넷이 생긴 이후 각 교회마다 예배실황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모이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 때문에 온라인 예배가 생기고 거기에 코로나 팬데믹이 기름을 끼얹은 것입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것도 분명히 믿음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꿈쩍하지 않는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마음의 중심과 실제 삶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담력을 주소서
  2. 세상을 따라 흔들리지 않고 모이기를 힘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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