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길
열왕기하 22장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성경을 읽으면서 많이 놀라는 사실 중의 하나는 히스기야 같은 선한 왕에게서 므낫세와 같은 최악의 왕이 나왔다는 것과, 아비 므낫세와 똑같은 악을 저질렀던 아몬과 같은 왕에게서 요시야와 같은 선한 왕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도 솔로몬 같은 지혜로운 아들이 있었는가 하면 암논 같은 망나니도 있었고 압살롬 같이 자기 부모를 무는 독사같은 자식도 있었습니다.
압살롬에게 언제 반역의 마음이 들어갔을까요? 솔로몬이 압살롬보다 동생이었으니 압살롬은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아내를 취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때에 그의 안에 죄의 영역이 넓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복동생을 강간하고 버린 암논이나 아버지의 수발을 들던 여인을 부인으로 달라고 했던 아도니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다윗의 파렴치한 죄를 보았기에 그들도 성적으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유다를 멸망시킨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덤으로 얻은 15년의 삶 중에 태어났습니다. 이 15년 동안 히스기야는 업적이라고 할 만한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다에 해로운 일만 저질렀습니다. 그 중에서 최악의 작품이 바로 므낫세였던 것입니다.
자녀 교육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 다 중요합니다만 한 쪽이 약하다면 들려주는 쪽이 약한 것이 훨씬 낫습니다. 말을 잘하고 삶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보다 삶을 보여주고 말을 못하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6) 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5) 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이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이 성도들에게서 소망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은데 왜 물어보겠습니까? 소망을 보여주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삶입니다. 전도도 말보다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삶에 말이 더해지면 더 능력 있게 전도할 수 있겠지만 삶이 없는 말은 오히려 믿음을 가증한 것으로 만듭니다.
점점 더 전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세대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 하나가 자기 믿음만 제대로 그 다음 세대로 물려주거나 이웃 한 사람에게만 제대로 믿음을 전해줘도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영혼을 더럽게 만드는 정보들이 스마트폰을 비롯한 많은 경로들을 통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또 신문이나 방송도 교회의 안 좋은 모습만 적극적으로 보도해서 세상에 기독교를 악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디어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고 멸망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믿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나 직장동료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전에 자식을 세 명이나 수재로 키운 어떤 어머니가 자기의 교육방법을 설명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분이 한 일은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엄마와 함께 책을 읽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읽게 되었고 그것이 학업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믿음으로 살게 하는 법은 간단합니다. 부모들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부모가 예수 믿는 기쁨 가운데 살며 순종하고 사랑하면 아이들도 언젠가는 그것을 따르게 됩니다.
당장은 세상의 재미 때문에 믿음으로 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세상의 어려움에 시달리다 보면 자기 부모에게서 보았던 하늘의 소망을 찾게 되는 날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 믿음의 모순이나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에게도 분명히 악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믿는 사람의 행복하고 진실한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바로 전하는 것과 초신자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믿은 사람이 바른 길을 가면 뒤에 따라가는 사람도 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여정 가운데 때로는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자녀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왕의 악한 자식들이 맺은 악한 열매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자녀들 뿐만 아니라 내 믿음의 모순 때문에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을 만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한 큰 죄를 지었지만 자식들을 모아 놓고 자기 잘못을 고백했더라면 그들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신하들에게 그렇게 하고 친구들에게 그렇게 했더라도 분명히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진실한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람과는 갖가지 인간관계의 기술이나 말재주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자기가 모르는 자신의 속까지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는 오직 진실한 중심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 어두운 세대에 자녀가 되었든 이웃이 되었든 다른 사람 하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하나님께 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믿음의 모순이 그들에게 실망과 상처를 준다면 하나님 앞에 큰 책망거리가 될 것입니다.
여지껏 그렇게 하지 못한채로 자녀가 장성하고 이웃에게 평판이 좋지 못해서 후회스러우십니까? 하나님 앞에는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그렇게 하면 됩니다.
오직 진실하게 믿음으로 살며, 회개해야 할 때에도 진실하게 회개하고 외식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 먼저 내가 말보다 삶이 빛나는 성도 되게 하소서
- 은혜로 주신 믿음 한 사람에게라도 제대로 전해주고 주님 앞에 서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