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을 잃어버린 시대
빌립보서 2장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저는 27년 전에 성령세례를 받고 제 삶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그 후에도 제 마음대로 산 일도 많았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드린 기도와 제 삶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꽤 오래 돌이키지 않은 때도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마음의 자세는 이 세대의 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네가 네 삶의 주인이다”라는 가장 마귀적인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이 악한 사고방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단의 교묘한 전략으로 인해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이 시대를 사는 거의 모든 성도들이 다른 어떤 시대보다 이 악한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습니다.
지금 제가 목회를 하면서 가장 고민스러운 것 중의 하나는 성도들에게 원칙이라는 것을 넣어주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신세대 뿐 아니라 중장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어렵습니다.
주일 성수라든지 십일조 생활이라든지 몸으로 봉사하는 것 등 예전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복종이라는 말은 구세대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목숨을 내어 놓고 아버지께 복종하셨습니다. 저는 이 시대의 성도들이 회복해야 할 신앙의 덕목 1순위가 바로 복종이라고 믿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고 자기의 뜻대로 자기 보좌를 만들어 거기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당신의 보좌를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반면에 이 시대 사람들은 어느 세대보다 더 자기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어느 시대도 지금만큼 각자가 자기의 주인이 되어 보좌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앉아있는 때는 없었습니다.
예전에 아이들을 교육할 때는 원칙이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장황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사회적인 통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일히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이 시대의 가정 교육이 “네가 너의 왕이다”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통념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예전에는 사회의 통념을 따라 살던 장년의 성도들도 마찬가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의 주체가 자기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감사하고 감동적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마음의 감동입니다. 자기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명령은 행하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장년세대도 물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버려야 할 생각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는데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어쩌다가 대한민국에 태어났고 어쩌다가 미국에 와서 살게 되었으며 어쩌다 보니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어쪄다가’ 가 사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 받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존경과 대접이 아니라 멸시와 치욕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30절은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수치를 약으로 여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수치는 고사하고 작은 일도 참지 않고 불평하고 싸웁니다. 하지만 분명히 아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수치를 감내하는 것이 예수님의 형상을 입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두번 째 버려야할 것은 이해가 되어야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들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미련한 자들입니다. 하물며 하늘의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만약 이해한 것만 순종한다면 예수님 만큼의 지혜가 있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일들도 얼마나 불합리한 일이 많습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와 힘겹게 들어간 회사에서 대접받고 일합니까? 자기가 이해되는 일만 합니까? 자존심 상하고 이해되지 않아도 하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할까요? 자기의 생계와 성공 때문입니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돈에 복종하고 자기 명예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 복종의 대상을 하나님의 계명과 천국의 소망으로 바꿉시다. 세상에서 내 지위를 버리고, 내 꿈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그대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단이 여러 세대를 통해 세워놓아 우리안에까지 자리잡은 비뚤어진 생각은 묵상하고 이해해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이것이 맞는지 아닌지를 생각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순종하면 어떤 복을 받는지를 계산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의 생각을 맞추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계산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자기 인격이 되어 무조건 행하도록 마음부터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복종입니다.
이 복종을 회복하여 예수님 계신 천국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 이해하고 계산하지 말고 복종하는 믿음을 주소서
- 자기가 받아야 할 대접을 기대하지 말고 수치를 참기까지 낮아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