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사람들은 항상 “이 괴로운 시대에 우리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은 많다. 병자들, 슬픔을 당한 사람들, 고난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만일 어떤 집에 불이 났는데 그것을 보고도 그 집주인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집주인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다.
강도가 총을 가지고 어떤 사람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소리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이런 비유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불신 세력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믿고 그분의 보혈을 찬양하고 지옥의 불을 경고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두려워할 때 우리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만다. 지옥의 세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천국의 세력은 그보다 더욱 강하다. 마귀의 능력이 막강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지옥의 세력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그 싸움에서 이기면 그 열매는 너무나 크고 아름답다.
미국 역사상 자유를 위해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은 패트릭 헨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국민을 위해 불타는 헌신으로 충만했던 그는 1775년 3월 23일 이렇게 외쳤다.
“죽음보다는 쇠사슬에 매여 사는 것을 택할 정도로 생명이 소중한가? 노예로 편하게 사는 것이 자유인으로 힘들게 사는 것보다 더 나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외친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그리스도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가 이보다 더 연설을 잘했을까? 나는 패트릭 헨리의 말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이렇게 바꾸어 표현하고 싶다.
“오래 살기 위해 박해를 피해야 할 만큼 그토록 장수하는 것이 중요한가? 기도하러 교회에 가는 것을 마다할 정도로 집에서 편히 쉬는 것이 좋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선언한다. 부흥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제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엄숙히 묻자. 최후 심판의 때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성경구절이나 몇 개 읊어대는 껍데기 예수쟁이’라고 비난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