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것을 이루는 믿음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에스겔 37:1-10)
구속사와 세속사에 어디를 뒤져보아도 이처럼 말이 안 되는 경우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른 뼈들에게 소리치다니? 들을 귀가 없는 것들에게 소리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마른 뼈들! 이것은 절망의 화신이다. 설교자들은 가증한 것을 말한다. 하자민 선지자들은 불가능한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상처는 곪아 터져서 문드러졌다. 그러나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계속 악화되어 죽음의 문을 통과한 뒤 마른 뼈 조각들이 되었다. 이러 뼈 조각들은 마치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라고 합창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 가지 물어보자. 원래 가능한 것을 행한다면 거기에 무슨 믿음이 필요하겠는가? 불가능한 것을 이루려고 하니까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우리는 전대미문의 큰일을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이루라고 거듭 말씀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요술을 부리라는 말씀은 아니다. 우리의 무능력을 철저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하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사전에서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것이다.
레너드 레븐힐의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