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히 여겨야 위로할 수 있다
욥기 16장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3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
4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5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
하나님 사랑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은 바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거두신다면 구원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이미 모두 멸망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가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기독교의 문제입니다.
한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잘못을 했든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는 형벌의 장소에서 최악의 고통을 영원히 당한다고 생각하면 불쌍한 마음이 들어야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오직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역사할 때 우리는 남을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은 불쌍히 여기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남의 잘못이 보이면 자기 믿음이 자란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남을 비판하는 것은 누구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모르던 사람이 어느날 그것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면 그것들을 구별하게 되고, 그 당연한 결과로 남의 허물치 보이는 것입니다.
성도가 계속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면 어느 순간 그 비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게 될 때가 옵니다. 어떤 면은 변했지만 어떤 면은 여전히 그대로인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시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나 남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지가 바로 그 사람의 믿음의 그릇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러 왔다가 욥의 말을 듣고 그를 책망하기 시작합니다.
욥의 말이 하나님 앞에 정당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러나 그들의 비난은 그보다 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도 아니었고 욥을 세워주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욥이 아니꼬왔던 것입니다.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는 욥의 말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전도를 할 때나 구제를 할 때나 목회를 할 때에 내 마음이 그 대상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서 참 지혜가 나오고 그 사람을 살리는 좋은 약과 같은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욥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그의 말꼬리를 잡고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실수를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 사람의 문제가 눈에 보인다고 신나게 말씀을 검을 휘두르고 나면 그 사람은 위로가 아닌 큰 상처를 받고 휘청거리게 됩니다. 늦게라도 그것을 알면 감사하지만 많은 경우에 끝까지 말씀을 검을 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베는 것을 영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당시 요즘 쓰는 말로 상위 1퍼센트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의 욥이 심정을 열에 하나라도 이해했다면 그의 마음을 쓰다듬어주며 하나님의 뜻을 전했겠지만 그들은 오히려 차갑게 욥을 비난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고 여전히 그런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지껏 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을 계속해서 봐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이런 일들은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집니다.
예술계는 천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재들의 가장 큰 특징은 남을 가르치는데는 재주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것들이 저절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한다면 천상의 목소리를 타고 났고 그림을 그린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고민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왜 안 되지? 되게 쉬운데”
믿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믿게 된 것이 기적 중의 기적이고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이 없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이 없는 사람을 볼 때, 우리는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 안에 믿음과 선한 양심이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믿음이 없던 시절을 잘 더듬으면서 그들을 친절하게 잘 인도해야 합니다.
오늘 정말로 남의 마음을 한 번 헤아려보려고 힘써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말 저 사람의 마음 자리에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시고 권면과 위로를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느끼고 감사하는 진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남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마음을 주소서
- 내가 믿었다는 것이 은혜 중의 은혜라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