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장 11-15

사도행전 16장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성도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늘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 안에 있는 성도들의 공통점이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다 어떻게  자기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놀랍고 감사하다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어디를 가도 복음을 전하고 싶어합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님들도 그 안에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이 열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열의 아홉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대놓고 적대감을 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복음은 선택된 사람들, 그것도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된 사람들만 들을 수가 있는 하늘의 언어입니다. 하늘의 언어란 말은 세상 언어의 뜻을 알아듣는다 할지라도 복음 안에 있는 생명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알아듣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의 루디아를 보니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복음)을 따르게 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의 어떤 마음을 보고 열어 주시는지 항상 의문이지만, 주님께서는 루디아의 마음을 여셨고 또 우리의 마음도 여셔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동시에 큰 책임감입니까?

열의 아홉, 아니 백의 구십 구는 복음을 전하다 홀대를 당한 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여실 그 한 명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복음을 전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더 감사한 것은 “너희가 빈 평안이 합당하지 않으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전도를 하다가 실패한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큰 보상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또 당장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 사람이 인생의 어려움이나 전환점을 맞을 때 지금 전한 복음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제가 처음 은혜받고 학교 다닐 때에 열심히 전도한 사람들 중에는 처음에는 복음을 외면해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 제게 찾아와 주님을 만난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이 바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적어도 삼년 약정 예금처럼 기한이라도 정해져 있기를 바라지만 복음은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간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말씀만 의지하고 전해야 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 한 일입니다. 그는 바울이 나그네란 사실을 알고 바로 그를 자기 집에 영접해서 빌립보 지방에서 사역하는 동안 열심히 대접했습니다.

정말 거듭나 구원을 받은 사람은 언제나 남을 대접하는 일에 넉넉합니다. 은혜가 넘칠수록 마음은 넓어지고 세상에 묶인 것에서 더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인색한 것은은 주님을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남을 미워하는 것만큼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인색한 사람은 복음을 전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많은데 그만큼 하늘의 소망을 전하는 사람이 세상의 것에 인색한 것이 말이 되지 않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남에게 넉넉하십시오.

“이것을 베풀면 이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일까?”라는 계산조차도 하지 마시고 넉넉히 베풀면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돌아오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그 넉넉하게 베푼 것을 주님께서 다 기억하시고 하늘의 것으로 보상하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고 모든 사람을 넉넉한 마음으로 대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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