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 1-10
사도행전 3장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아마도 많은 성도님들이 이적과 능력에 대해 어느정도의 컴플렉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들은 그보다 더 할 것이구요.
마가복음 16장 17-18절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라고 시작하며 방언과 병고침과 축사와 뱀과 및 모든 독물의 해로부터 안전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그런 이적들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할 때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가복음 16장 20절 하반절의 말씀도 함께 묵상해야 합니다.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저는 여지껏 다른 사람의 병을 위해 기도해서 확실하게 주님의 역사를 본 일이 몇 번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당시 전도하려고 하던 집의 돌박이 남자아이가 넘어져서 입을 다쳤습니다. 그런데 막 나오기 시작한 앞니에 입술이 심하게 찢어져서 평생 흉터가 남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마침 아이가 다치고 병원에 다녀온 날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기도해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괜히 기도해 주고 망신만 당할까봐 마음에 심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 딱 감고 “제가 아기를 위해서 기도해 줘도 될까요?” 라고 엄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분은 완전히 불신자였지만 그 집의 삼대독자 아들이었고 자기의 실수로 아이가 다친 것도 있었기에 그 엄마는 제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나오면서 “하나님 꼭 응답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세요” 라고 마음으로 또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그 집을 아는 어떤 분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는데 제가 기도해 준 바로 다음 날 아침 입이 깨끗이 나았고 그 엄마가 그 주일에 교회에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에 그 엄마는 정말 교회에 나왔습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는 것이 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 후 비슷한 몇 번의 경험에서 찾은 공통점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대상이 다 제가 전도하려고 하던 불신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 말씀처럼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를 보면 디모데가 자주 걸리는 위장병을 위해 포도주를 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믿는 사람끼리 손을 얹으면 낳을텐데 왜 포도주를 쓰라고 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생각해 보면 이런 표적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당연히 항상 나타나는 일들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그 복음을 더 확실하게 증명해 주시는 것이 이적인 것입니다.
아실 것은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서의 병고침과 치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의 병고침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치유의 은사가 강력하게 나타나는 사람은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병을 고칩니다. 반면에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서의 치유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전도할 때 나타납니다.
이 이야기는 제 경험과 묵상을 통한 것이니 신학화 시킬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전도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최고로 관심을 가지시는 사람은 예수님의 증인 되는 사람입니다. 본문의 베드로와 요한은 막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증거하려는 일에 온 마음을 쏟고 있었기에 이런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고 혼 힘을 다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셔서 이런 이적들을 통해 그 살아계신 증거들을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이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잘못된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믿음입니다. 모여서 방언으로 기도하지 못하는 교회가 잘못된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는 교회가 잘못된 교회입니다.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시는 참 성도 참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