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장 29 – 31
사도행전 4장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사도들을 어떻게 처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는 예수님을 전하지 말라고 위협하여 풀어주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너희 말을 듣는 것이 옳겠는가”라며 돌아갑니다.
기다리던 성도들에게 돌아간 그들이 있었던 일을 알려주자 성도들은 시편 2편의 말씀의 말씀을 떠올리며 “과연 세상의 권세자와 왕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며 오늘 본문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오늘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이들의 기도의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는 언제나 주님의 나라가 먼저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인본주의 신앙은 아무리 똑같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찾아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사람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를 살펴보면 우리의 신앙이 신본주의인지 인본주의인지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이라고 왜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모일 때마다 주님의 나라를 구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들을 사용하셔서 복음을 널리 전하시기를 구했습니다.
이적을 구할 때도 자신들의 병을 고치거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구했습니다. 개인의 문제도 기도했겠지만 주님 나라를 위한 기도가 언제나 먼저였습니다. 이것이 신본주의입니다.
물론 이들에게도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고 거기에 대한 기도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기 삶을 드린 만큼 개인의 문제는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또 무엇을 하든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니 개인의 기도도 하나님 나라의 기도로 변할 것입니다.
“내 수입이 늘면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내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면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이 병을 고쳐주시면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등등 자기 문제가 해결되면 주님 뜻대로 살겠다는 기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법칙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나라와 의에 맞게 더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이게 생각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주님 나라를 소망해야 하고 마음과 생각과 무엇보다 행실이 그 소망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정말 잡생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우리의 생각이 주님의 나라를 구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주님의 일을 한다면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오히려 그 나라에 해가 되는 일을 합니다.
본문의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문 앞에서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킨 것부터, 그들이 온전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증거한 것, 또 그들이 대제사장과 무리들에게 잡혀갔다 풀려나고 교회에 돌아와 기도한 것 중에 사람의 뜻이 들어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이 참된 성도의 삶이고 신본주의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의 기분과 뜻을 굽히는 근신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기억하십니다.
날마다 우리 삶에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은 당장 손에 남는 것은 없지만 영원한 나라에 많은 것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은 뭔가 손에 쥐는 것 같아도 그것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날이 옵니다.
사람의 마음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완고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모래성을 쌓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돌이키지 않고 고집스럽게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도 여러가지 형태의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습니다. 의료기록, 출입국기록, 크레딧기록 그 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이 기록으로 남습니다.
세상도 이런데 우리의 생각까지 아시며 어떤 것도 잊지 않으시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기록은 얼마나 분명하고 공정하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삶이 하늘에 기록됩니다. 얼마나 두려우며 얼마나 소망이 되는 말입니까? 이것이 소망이 되는 사람이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성도입니다.
내 나라는 쇠하고 주님의 나라가 흥하는 진짜 인생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