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장 38 – 42

사도행전 5장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오늘은 두 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사도 바울의 바리새인 시절의 스승이었던, 당시 최고의 율법학자로 존경을 받던 가말리엘에 관한 것입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를 기억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도 바리새인이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죽이는 일에 찬성하기에는 너무나 증거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런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다고 믿습니다.

왜 이단들이 나오고, 왜 질투에서 나오는 이단시비들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경외하고 찾는 자들에게 바른 진리를 가르쳐 주셔서 이단이 되거나 불필요한 이단시비에 빠지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써서 위태한 곳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 영혼을 살리는 일 외의 불필요한 싸움에 끼어드는 일도 없기를 바랍니다.

진짜 싸움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전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진실하게 싸울수록 악한 영들은 그 사람을 주목하고 방해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죽었습니다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순교자가 되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일제강점기에 주남선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경남거창에서 목회를 하시던 목사님은 끝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하면서 유명한 평양형무소에서 주기철 최권능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들과 끝까지 함께 했던 분입니다.

다른 목사님들과 똑같은 고초를 겪었지만 감옥에서 순교하지 않고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거창으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자기 같은 죄인에게 또 양떼들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온 힘을 다해 목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 6.25전쟁이 터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난할 때 목사님은 피난가지 못한 양떼들을 위해 거창에 남았고 인민군들에게 붙잡혀 심한 구타를 당하고 풀려났지만 며칠 후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내가 순교를 아무리 원하였지만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니 되지를 않더라”였습니다.

우리를 위해 그 모진 고난 당하신 주님을 위해 아무런 고난도 당하지 않고 그 앞에 가는 것은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자랑스러운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사실은 고난이 그 사람을 피해간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고난을 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때까지는 자기가 일부러 고난을 찾아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기 믿음만 지켜도 되는 세월이었다면 곧 다가올 세상은 가만히 있어도 폭풍우가 밀어닥치는 때가 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옥에 대한 두려움만 가지고는 그 때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박해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우상에게 절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아도 박해가 너무 극심하면 이기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 사도들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 받는 것을 기뻐할 만큼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두려움은 능력이 아니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사랑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셨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갖은 박해와 고초를 주님 사랑으로 이겼습니다. 그 후 이천 여년 동안 구름같이 둘러 쌓은 허다한 증인들이 주님 사랑으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바톤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늘도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반드시 “그렇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어떤 능욕과 고난도 면류관으로 여기고 달게 받기를 원합니다. 힘이 없고 연약하니 저를 도우소서.”라고 대답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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