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장 42절
사도행전 5장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성경은 성도를 ‘증인’이라고 부릅니다. 증인은 법정 용어로 어떤 사건에 대해서 자기의 목숨을 걸고 증언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성도가 증언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의 메시아와 같은 뜻으로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분이라는 증언하는 것이 성도가 사는 이유입니다. 주님의 이름과 십자가의 공로를 증거하면 사망과 어두움에 헤매는 사람들을 사망에서 건집니다. 동시에 그 이름을 증거하면 할수록 자신의 영혼이 강건해지고 주님과 연합하는 최고의 유익이 있습니다.
6장에 보면 헬라파 과부들이 교회에서 매일 하는 구제에서 빠지는 일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불평을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요즘 그런 일이 생긴다면 목회자가 나서서 그 일을 중재하려고 할텐데 사도들은 일곱 명의 집사들을 세우고 자신들은 그 일에서 과감하게 손을 뗍니다.
그 이유는 말씀과 기도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삶입니다.
복음은 죄사함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이 다 포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말씀을 여러 각도에서 풍성하게 전해야 했고 기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그 주신 사명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해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진실하게 증인이 되려고 하면 구제나 여러가지 선행, 그리고 도덕적인 삶도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세상의 일도 큰 목적이 하나 정해지면 그 다음 세부사항이 그 목적에 맞게 정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행을 강조하는 어떤 교파는 선행 없이 전도만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선행을 한다고 진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선행이 증인의 삶으로 인도하는 직접적인 길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고 힘을 다하면 결국 선행도 하게 되고, 자기가 도덕적으로 살지 않으면 예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도덕적인 삶에도 힘을 쏟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특별호 생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할 때에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세상 풍조를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복음을 전할지를 생각하다가 복음의 핵심을 놓치는 우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그 결과 각종 전도훈련 프로그램들은 계속 나오는데도 신실한 증인들은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성도는 원색적으로 복음을 전할 때 가장 강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는 왕이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라고
외칠 때 그 영혼에 하늘의 능력이 임합니다.
그리고 죄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 죄를 회개하는지, 또 성도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지 주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전해야 합니다. 죄는 죄라고 가르쳐 주고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려니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복음에 반대하는 어떤 방해에도 강력하게 대항하게 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멋있게 죽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진실한 증인이 되려고 온 힘을 다하다 보니 순교의 자리까지 간 것입니다.
어떤 선교사님의 말대로 ‘자기 삶 하나 바꾸지 못하는 복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능력이 되겠습니까? 작은 비바람에도 쓰러지는 집을 누가 짓고 싶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점점 그 실상으로 다가오는 마지막 때의 환란을 이기는 길은 목숨 걸고 주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증인이 되는 것 뿐입니다.
복음을 있는 그대로 증거하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다시 오심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