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율법의 완성
로마서 13장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의 주제를 율법과 복음의 차이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율법과 복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제가 여지껏 고민해서 깨달은 율법과 복음의 가장 다르게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정답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공로는 율법의 정죄가 없으면 힘 입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만능 툴처럼 생각합니다. 그 중 대부분은 오히려 복음을 더 편하게 죄를 지을 수 있는 면죄부처럼 사용합니다.
분명히 복음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죄를 마음 놓고 지어도 된다는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죄짓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십자가 앞에 나올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나가는 물리적인 길은 없습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주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고 오지 선교를 간다고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기의 죄를 부끄러워하고 간절히 도움을 구하는 마음이 주님 앞에 나가는 길입니다.
로마서는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법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편하게 율법의 계명을 범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 앞에 나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하게 행하자는 말의 뜻은 그 다음에 나오는 것들을 마음으로부터 멀리하는 것입니다. 단정하다는 말의 원어는 ‘점잖다’ 또는 ‘깔끔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낮이라는 말에도 힌트가 있는 것처럼, 같이 율법을 아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지 않고,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려고 힘쓰는 것이 단정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방탕하지 말라는 말은 흥청거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치와 쾌락을 좇아 사는 것이 흥청거리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섬기던 목사님은 교회에서 집을 구해드렸는데 교인들의 평균 수준보다 집이 좋다고 더 싼 집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이원철 선교사님도 오래 된 차를 운전하다가 팔꿈치가 상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좋은 차를 주겠다는 사람이 많아도 그렇게 되면 현지인들과 관계가 멀어진다고 한사코 받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의 정치인들도 서민들 모임에 가는데 고급스러운 차를 타거나 명품으로 두르고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사치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방해되는 소비생활을 말합니다.
술취함이 뭔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성도는 아예 술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음란은 정상적인 부부관계 외의 모든 성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지금 세상에서 용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것이라도 부부 사이가 아니라면 음란입니다.
그런데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음란에 빠진 사람은 그것이 심각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죄의 무서운 점은 빠지면 빠질수록 하나님도 이해하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회개하여 살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이지 율법의 내용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은 주님의 마음과 행실을 닮으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욕심을 부리셨습니까, 음란한 행동이나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천지의 주인이신 그분이 누군가를 시기하실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아니면 다투신 적이 있습니까? 악한 자들을 책망하신 적은 있어도 그것은 다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율법의 의를 따라 살려고 하는 것을 율법주의라고 비웃습니다만 그것은 죄를 사랑하는 마음과 교만에서 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그 분의 뜻을 행하려 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구원하려고 온 힘을 다하면 율법과 복음의 차이가 무의미해집니다. 저절로 자기가 행할 바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율법이 있는 사람들 앞에서 율법을 존중하고 율법이 없는 사람 앞에서는 율법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오늘 바울이 하는 말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과 미워하시는 일이 뭔지 알아서 미워하시는 일은 버리고 기뻐하시는 일은 순종하자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당신의 구원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순종하여 구원을 이루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