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법을 지키는 사람 vs. 살았기 때문에 법을 지키는 사람
로마서 10장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유대인들은 복음을 믿고 큰 자유를 얻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율법의 모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들이 느꼈던 자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식단을 따라야 한다고 해봅시다. 우선 돼지와 관련된 음식은 하나도 못 먹습니다. 삼겹살, 제육복음, 순대, 소세지, 그리고 김치찌개에도 돼지고기를 못 넣습니다. 거기에 오징어, 문어, 게, 랍스터도 못 먹습니다.
또 그들의 명절을 그들이 지키는 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선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불도 피우지 못하고 자동차도 타지 못합니다. 유월절 초막절 같은 절기에는 길게는 일주일까지 성회로 모여야 합니다.
복음은 이런 겉사람이 지켜야 하는 법들을 속사람의 진실함으로 지킬 수 있도록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만을 보고 두려워만 하던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복음을 통해 큰 자유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 우리들은 거꾸로 율법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고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이 사람에게 주어진 원래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대신계명과 대인계명으로 나누어집니다. 대신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룬 법이고 대인계명은 사람과의 관계를 다룬 법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율법대로 살면 하나님의 복이 그 삶 가운데 이루어지게 됩니다. 율법이 부담이 될 때에는 내가 그것을 행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남이 내게 그것을 행할 때는 그것으로 내가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노부모를 모시며 자녀를 기르는 사람이 있다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말씀이 그 입장에 따라 얼마나 이율배반적이 되는지를 이해할 것입니다.
자기의 부모가 자기에게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려면 부모를 공경해” 라고 할 때와 자기가 자기 자녀에게 그 말을 할 때가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계명을 절대적으로 순종한다면 이 계명은 사람에게 가장 확실한 노후대책이 될 것입니다.
다른 모든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면 인생에서 많은 걱정과 염려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집 문을 잠그고 다닐 필요가 없고 어떤 일을 할 때 계약서를 봐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고보면 율법은 평안의 법인 것입니다.
대신계명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만을 섬기고 우상을 멀리하며 그 뜻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큰 평안과 축복을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후손이기에 법으로 정해진 선은 더 넘어가고 싶은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 본성 때문에 두려워 하면서도 결국은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제사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사법은 죄를 지었을 때에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것은 바로 자신을 영원한 제물로 주셔서 이 제사법의 마침이 되신 것입니다.
그 영원한 제사로 율법을 범한 사람이 그 공로를 힘입어 더러워진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율법의 모든 계명들이 여전히 성도의 삶의 규범이 되어야 합니다.
암환자들이 항암치료를 하는 것을 보니 종양지수가 어느 이상이 되어야 투약을 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서 기준이 있어서 그것을 넘어야 치료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그런 역할입니다. 무조건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준을 넘어갈 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그 죄를 씻는 것입니다.
또 어떤 율법들은 회개할 필요가 없도록 바뀐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 예로 들었던 음식에 관한 법은 사도행전에 나온 대로 피를 먹지 말고 목매어 죽인 것을 피하라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라는 것도 그렇게 죽은 짐승은 몸에 피가 고여 있어서 결국 피를 먹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피를 멀리하라는 것 외에는 음식에 관한 율법은 없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아예 율법의 모든 명령을 다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회개를 하겠습니까?
계명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깨닫게 하고 그들로 짐승을 가지고 번제단으로 나오게 한 것처럼, 우리도 계명을 존중하고 우리 삶의 생명으로 삼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참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방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랑합니다. 우상의 제물마저도 믿음으로 먹을 수 있었던 바울이 만약 그것이 형제가 시험에 들게 한다면 일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해도 괜찮고 하면 안 되고를 따지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상이냐 벌이냐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지 말고 하나님을 온 힘 다해 사랑하십시오. 형제를 내 몸 같이 사랑하십시오. 갈 길이 환하게 보일 것입니다.
다만 아무리 온전한 마음을 가졌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살 수 없기에 주님께서 영원한 제사를 완성하시고 우리의 죄를 씻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마침이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생명 주신 주님을 생명 다해 섬기는 사람이 참 성도입니다.
- 자유를 외치며 법을 무시하지 않게 하소서
- 오직 하나님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참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