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병
세브란스병원에서의 특강을 시작으로 곳곳으로 집 회 초청을 받았다. 2004년 12월 미국 뉴저지에서 집회 초청을 받고 오십여 평생 동안 한 번도 가본 일 없는 지구 반대편의 멀고 먼 나라 미국을 향했다.
집회가 끝나고 목사님과 성도들은 나에게 뉴욕의 야경을 구경 시켜 주었다. 세계적인 도시 뉴욕은 거리마다 사람마다 성탄의 기쁨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야경은 노래와 함께 울려 퍼졌고 거리에는 감탄의 탄성이 메아리 쳤다. 나 역시 콧노래를 부르며 그 멋진 도시의 축제 속에 젖어 들었다.
그 때, 번쩍이는 불빛으로 익숙해진 나의 눈이 그 곳에 딱 멈췄다. 어느 교 회 담벼락에 종이처럼 구겨져 잠을 자고 있는 노숙인이 있었다.
“교회가 저들에게 문을 열어주면 저렇게 밖에서 자지 않아도 될 텐데….”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목사님이 곁에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저 곳이 교회 건물 담벼락이어서 노숙인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것이지 다른 건물 갈으면 잠을 자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내쫓고 말아요.”
그 때 목사님은 내 가슴에 깊이 꽂히는 말 한마디를 던졌다. “사모님! 한국 노숙인은 더 비참해요.”
나는 몰랐다. 뉴욕의 눈이 부시도록 휘황찬란한 거리에서 깔깔거리며 밀려다니는 사람들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죽은 듯이 살고 있는 노숙인들이 모두 나의 이웃이었다는 것을…….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살을 에는 추위에 얼음장 같은 땅 위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던 홈리스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한국 노숙인은 더 비참해 요!”라는 말이 귀에서 메아리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그들의 비참한 모습이 내 눈에서 떠나지 않고 자꾸 만 보였다. IMF 때 늘어나는 실업과 경기 침체로 노숙인들이 급증한다는 언론 보도가 시끄럽게 떠들었을 텐데, 나는 무관심하여 IMF 이후 7년이 지난 그때까지 노숙인이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일이 없었다. 아니 , 그들이 나와 함께 한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나는 매일 밤 나를 고민에 빠뜨리는 노숙인에 대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어느 날 새벽 현지를 답사하러 청량리로 나갔다. 아직 어두움 이 가시지 않은 겨울 새벽의 차디찬 공기 때문에 몸이 덜덜 떨려왔다.
청량리역 벤치와 건물의 후미진 곳에서 웅크리고 자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잠을 자고 있는 오늘 새벽은 올 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추위다. 어쩌면 저들 중에는 어젯밤 잠들어 오늘 아침에 깨어나지 못하고 얼어 죽는 자들도 있겠다 싶었다.
청량리 쌍굴 다리 건너에 가니 그곳에 노숙인 몇 명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서성이고 있다. 아직 컴컴한 어둠속이지만 그 곳에 와 있는 노숙인들이 할아버지인 것을 알았다.
“왜 여기에 벌써 와 계세요? 아! 점심을 주는 것이 아니고 아침을 주나 보군요.”
그런데 이가 다 빠진 그 할아버지의 대답은 달랐다.
“이따가 11시 40분에 주는 점심 먹으려고 왔어. 이제 조금 있으면 줄을 길게 서는데 힘 깨나 쓰는 놈들에게 우리처럼 힘없는 늙은이들은 뒤로 밀리기 일쑤지. 그래서 이렇게 일찍부터 앞자리에 와서 줄 서있는 거야. 그러니까 밥 을 주려면 아침 밥 좀 줘! 우리들은 밥 못 먹으면 얼어 죽어! 너희들처럼 한 끼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게 아니야. 우리들은 한 끼의 밥이 그냥 밥이 아니고 목숨이야!”
“할아버지! 만약 제가 밥을 드리게 된다면 반드시 새벽밥을 드릴게요. 그 러나 지금은 밥을 지을 주방도 없고 그릇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나의 들릴까 말까 하는 작은 소리를 들었는지 그 할아버지는 말을 이어갔다.
“밥 못 주면 물을 주면 되잖아. 웬 핑계들이 그렇게 많아. 어쩌구 저쩌구 말들 만 하지 말고 따뜻한 물 한모금만 줘! 아니 물 주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들어?”
“따뜻한 물 한 모금!”
그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왜 천둥치는 소리로 들렸는지 모른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미를 때에 마 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 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4〜36)
나는 평소에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 한 모금 주는 일이 어찌 이렇게 엄청난 상을 받나 의아해 했다. 먹을 것을 주고 물 한 모금 주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고 정말 쉬운 일이다. 밥 한 그릇, 냉수 한 그릇 주기 위해 땅 팔고 집 팔아야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리라.
주님은 우리 에게 우리가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시키셨다. 그리고 그 쉬운 일을 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칭찬하셨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그런데 이 일을 어쩌면 좋으랴! 아무리 곰곰이 기억해 보아도 물 한 모금 주는 그 쉬운 일을 내가 실천한 기억이 없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회개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주님! 저는 이렇게 무자비한 자요, 무정한 자입니다. 추운 겨울 길거리에 서 자고 일어난 저 불쌍한 영혼들에게 따뜻한 물 한 모금 준 기억이 없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청량리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물 주전자와 이동식 가스레인지와 물통을 사러 시장으로 나갔다. 그것들을 준비해 놓고야 그날 밤 잠을 잘 수 있었다.
혹시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부담이 있다면, 내 눈이 자꾸 머무는 곳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거룩한 고민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이 나에게 준 사명이다.
이가 다 빠진 노숙자 할아버지로 변장한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이 사람들이 너무 배고프단다. 네가 먹을 것을 주어라. 이 사람들이 너무 춥단다. 네가 입을 것을 주어라. 이 사람들이 너무 외롭단다. 네가 그들 곁에 함께 있어 주거라.”
나는 그 날부터 노숙인을 연민하는 깊은 상사병을 앓았다.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