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을 세우려면 옛것은 다 부서져야 한다(2)

남편은 분주한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 혼자 기도원에 못 보내겠어.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지 모르니 마음이 전혀 안 놓이네. 여보! 안 가면 안 될까?”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얼굴에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자 남편은 크게 당황하였다.

“그럼 막내를 데리고 가. 순아! 언니와 같이 기도원에 다녀와라. 여보! 오늘 하루 뿐이야! 내일은 틀림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해!”

남편은 몇 번이나 나에게 다짐을 받았다.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겨울방학 중이었던 막내 시누이는 빠른 움직임으로 밖으로 나왔다. 마침내 시누이와 함께 기도원으로 향했다. 내 인생에서도 처음이었지만 시누이는 나보다 더욱 생소한 길이었다. 평소에 나를 좋아하는 시누이는 그저 나와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 마냥 즐거워했다.

기도원으로 올라가는 산 길은 하얀 눈으로 쌓여 있었다. 2월 3일! 혹독한 추위가 살을 에는 듯 매서웠다.깊은 산 속 넓고 넓은 예배당에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모여들었을까?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어려운 남편의 허락을, 시부모의 허락을 받고 올라왔을까?

밤 10시경에 저녁 집회가 끝났다. 그 중에 태반 이상이 자리를 떠나 숙소로 갔고 어떤 이는 찬양을, 어떤 이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코 밑에 뭔가 와 있는 것 갈았다. 눈을 떠 보니 시누이가 누워서 코 밑에 얼굴을 빤히 놓고 내 기도를 다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여지없이 또 따라온다. “언니! 기도하지 말고 나하고 얘기나 하자” 하고 졸라대기도 한다. 할 수 없이 산 속으로 높이높이 올라갔다.

“언니! 언니!” 하고 시누이의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시누이는 혹독한 추위와 칼 같은 바람이 불어대는 눈 쌓인 산속엔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눈 위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주님!” 한 번 입을 열어보았더니 온 산의 바람이 다 몰려온 듯 ‘흑’ 하고 입 안이 얼어붙는다.

“주님! 제가 주님께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 이렇게 부르고 있어요. 주님! 저는 이명구 권사의 막내 딸이에요. 제 이름은 잊어버리셨겠지만 저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시는 저의 어머니 이름은 알고 계시겠지 요?”

나는 감히 내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 내가 주님이라면 내 이름은 도저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괘씸한 이름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오열이 터져 나왔다.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얼마 동안 울고 또 울었을까? 그 때부터는 하늘에서 솜 이불이 내려와 나를 덮어 주는 듯 조금도 춥지 않았다. 바람도 느껴지지 않고 온 산이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리고 저 멀리 까만 돌 위에 반짝이는 글씨가 보였다.

‘남편을 사랑하거라.”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주님! 저는 남편을 너무 사랑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랑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남편이 죽으라면 죽기까지 합니다.”

항변하고 있는 나의 앞에 남편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눈이 먼 장님에 귀머거리이고 벙어리였다. 온몸에 누더기를 걸친 더럽고 추한 모습이었다. 사면이 높은 산으로 막힌 골짜기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죽을 불쌍한 모습이었다.

“아! 아니에요. 주님! 이것은 제 남편의 모습이 아니에요. 그 사람은 젊고 건강하고 부유합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거지 모습의 남편은 뼈들이 끝없이 쌓여 있는 아골 골짜기를 향하여 가고 있었다.

“주님! 잘못했어요.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오직 저만을 사랑했어요. 그가 멸망의 골짜기에서 죽어가는 영혼임을 알면서도 단 한번도 주님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의 핍박을 받기가 싫었어요. 주님을 전하다가 제가 고통 당하는 것이 무서웠어요.

그러나 이제는 제가 죽을지언정 그에게 주님을 전하겠어요. 주님! 저의 눈을 빼서 그의 눈을 열어 주시고 저의 혀로 그의 혀를 대신하시고 저의 귀로 그가 듣게 해주세요. 저의 생명을 취하여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는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나는 정말 그 곳에서 애끊는 기도가 무엇인지 알았다. 그렇게 울며 불며 또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흐른 걸까?

남편은 아주 젊고 준수한 청년의 모습이었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찬양하고 있었다. 남편 앞에는 수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같이 그 광경은 뚜렷했다.

‘아! 주님이 남편을 구원해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로구나!’

그때 산 아래 성전에서 땡그렁! 땡그링! 새벽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새벽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에 기도하 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쌓인 산 속에서 밤을 샌 것이다.

그때서야 성전에 혼자 있을 시누이가 걱정되어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내려왔다. 새벽 바람은 매섭게 옷깃을 파고들었다. 성전에 도착하니 시누이 가 나를 보고 달려와 얼싸안고 엉엉 울어댄다.

“언니! 이 추위에 어떻게 얼어 죽지 않았어?”

“어젯밤 별로 출지 않았잖아. 바람도 없고……”

“무슨 소리야! 올 겨울에 어젯밤이 가장 추운 날이었어. 바람도 많이 불어서 체감온도도 최고였대.”

내 몸을 샅샅이 살펴보던 시누이는

“언니! 언니 바지 엉덩이가 뚫어졌어! 무릎 꿇고 앉은 운동화 뒷굽에 문질러져서 뚫렸나봐”하고 말했다.

‘어! 이상하다? 나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기도한 줄 알았는데 옷이 뚫어지도록 움직였단 말인가?’

그런데 시누이의 눈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밤새 얼마나 걱정했으면 그럴까? 마음이 풀리지 않는가 보다 하고 시누이를 안아 주었다. 그랬더니 시누이는 이렇게 속삭였다.

“언니! 어젯밤 나도 주님을 만났어!”

“뭐라구! 주님을 만났다구?”

“그래, 그렇다니까!”

우리 둘은 손을 잡고 깡총깡총 뒤며 울었다.

“언니가 산속으로 가버린 후 나 혼자 성전에 돌아오자 언니 걱정이 더 되는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죽기살기로 언니를 따라가야하는 건데……’ 후회하면서 자리에 퍼져 앉아 한참을 울었어.

그런데 내 앞에 어떤 부인이 영어도 아니고 불어도 아니고 일어도 아니고 하여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찬양을 하는 거야. 얼마나 듣기가 좋은지 나도 모르게 기도를 했어. ‘하나님! 정말 살아계시다면 나도 저 부인처럼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런데 내 입안에 음이 가득 찬 것 같았어. 그 음을 소리 내어 보았더니 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찬양을 하기 시작한 거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내 가슴에서 회개를 시키는 거였어. 나는 밤새 입으로는 찬양을 하지만 가슴으로는 뜨거운 회개를 했어.

언니!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어!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사랑이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을 믿어! 그 예수 님이 나의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어! 그 예수님을 내가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을 믿어!”

나는 그칠 줄 모르는 눈물로 믿음을 고백하는 시누이를 가슴에 안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하고 외쳤다. 눈물이 강물같이, 기쁨이 강물같이 흘렀다.

예수를 전혀 믿지 않고 오히려 미신을 섬기던 시댁에서 가장먼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은 기도원에 따라왔던 나의 시누이였다. 나는 시누이의 구원을 위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구원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 날의 시누이를 나의 믿음의 동역자로 영원히 내 곁에 주셨다.

시누이를 성전에 혼자 내버려 두고 갔다고 쓸데없는 걱정일랑 하지 말자. 하나님이 그에게도 구원을 베풀고 계시는 중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날부터 하늘에서 소낙비처럼 쏟아 붓는 천국의 보화 때문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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