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인물들 (5) 노아
창세기 6장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는 자아라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유아기에는 그저 먹고 싶은 것 자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이 자아였는데 인생을 더 경험하고 배우면서 이 자아는 여러 방면으로 그 발을 넓히게 됩니다.
그리고 자아는 심히 배타적인 존재라 나중에는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조차 불순종하게 됩니다. 성도는 이 자아를 부인하고, 이해할 수 없고 손해가 뻔히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노아는 당대의 의롭고 완전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 앞에 노아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럼 무엇이 그의 의였을까요? 그 답은 22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노아의 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최신의 설비와 많은 인력을 동원한 조선소에서도 그 사이즈의 배를 만들려면 몇 개월이 걸립니다.
그런데 노아는 그 가족 여덟 명이 그 방주를 지어야 했습니다. 재료조달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여덟 명이 한 것입니다. 그것도 물가가 아닌 산 위에 배를 만들었습니다.
홍수가 났을 때 그의 나이가 육백 세였습니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그는 오백세의 늦은 나이에 자녀를 낳기 시작해 셈 함 야벳 삼형제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장성한 후에 그 명령을 받았으니 아마 그 나이가 오백 서른 살은 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받은 하나님의 명령은 그가 오백 년 넘도록 배우고 경험한 것과는 전혀 반대의 일들이었을 뿐 아니라 누가 봐도 조롱할 만큼 미련한 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의인이라고 여기신 것은 이런 명령들조차도 순종할 만큼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9절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이 나오는데 그것은 에녹을 설명할 때 사용되었던 ‘동행하다’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란 아무리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라 할지라도 두 말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신 뿐 아니라 자기의 자녀들의 인생까지 걸었습니다.
노아 입장에서는 분명히 믿었으니 걸었다는 말에 어폐가 있지만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그의 순종은 만약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허송세월은 물론이고 일평생 따라다닐 비웃음까지 감수한 모험 아닙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고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것도 수십 년간 순종했습니다. 방주를 짓는 것은 잠시 한 번 하고 그칠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해서 세상에서 잃을 것이 없을 만한 명령은 거의 없습니다. 반드시 어떤 손해를 감수해야만 합니다. 비웃음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번 순종한다고 모든 것이 완전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새겨야 할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아서 받게 되는 손해는 순종할 때 감수해야 하는 손해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세상의 비웃음을 피하려다가 나중에 하나님의 비웃음을 사게 되면 그것이 바로 영멸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은 너무 극단적이 아니냐고 불평합니다만 영생과 영멸만큼 극단적인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극단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바로 그 말씀의 순종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순종의 결과로 코에 호흡이 있는 모든 생물이 멸절될 때에 그 가족까지 구원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아담이 모든 인류의 조상인 것처럼 노아 역시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되는 복까지 받았습니다.
첫 조상 아담은 불순종으로 사망에 빠졌지만 그 다음 조상인 노아는 순종함으로 그와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인생을 걸고 순종했더니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 삶은 순종과 불순종의 갈림길의 연속입니다. 순종을 선택할 때마다 하늘의 빛이 임하고 불순종을 선택하면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됩니다. 순종하는 데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단 하나의 이유밖에 없지만 불순종하는 데는 손해볼까 두려워서,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서, 등 수천 수만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노아처럼 순종하는 단순한 길을 걸어서 하늘의 복을 받으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