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라
교회는 세상과 육신과 마귀를 하나로 묶어 적으로 규정했다. 세상은 전진 배치되어 육신과 마귀가 교회를 상대로 싸우는 통로로 쓰인다. 온갖 유혹으로 가득한 세상이 없었다면 마귀는 사람을 꼬드기고 파괴하는 데 서툴렀을 것이다. 육신의 정욕도 세상이라는 자양분이 없었다면 영양실조로 죽었을 것이다.
세상은 카멜레온처럼 온갖 형태와 색깔로 변신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세상의 환경에서 자란다. 훌륭한 설교자였던 제임스 알렉산더 박사는 연륜과 영성이 깊어지면서 세속 사회화의 파괴적인 속성과 악의 세력을 염려하면 이런 글을 썼다.
“부모로서 나이가 들수록 자녀를 이 세상에서 어떻게 길러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다. 신실한 사람들뿐 아니라 심지어 목사들조차 방탕한 자녀들이 많다니 경악스럽다.
부모의 가르침과 본보기에 대항하는 이런 영향이 들어오는 문은 이른바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일 것이다. 옷차림과 책과 오락을 통해 기독교와 무관한 환경이 이미 형성되었다. 우리의 가정은 일치단결하여 세상의 유행에 맞서 세파를 깨뜨려야 한다.
신앙적으로도 어린 자녀를 평균 이상으로 키우는 일보다 용기와 자립이 필요한 일은 없다. 성경이 말하는 자기 부인과 희생과 십자가를 지는 것은 우리가 흔히 택하는 길이 아니다. 우리가 친구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별 차이 없이 살기 때문이다.”
<뉴욕 옵저버>는 청년들을 휘감고 있는 오늘의 사회와 풍습의 돌풍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주일에 자유롭게 여행하며 즐거움을 추구하게 되자 신성한 날에 꾸준히 이어 온 진지하고 차분한 활동이 사라지고 있다. 주일 하루를 소중하게 보내는 가정이 드물다. 주중에 청년들은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세상과 어울려 쉽게 동화된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 없이 즐겁고 무모한 장소를 즐겨 찾는다. 그들이 따르는 사회가 용인한 춤, 놀이, 오락을 가리지 않고 즐긴다. 이런 사고와 생활의 방식은 기도하는 것, 책임지는 것, 시련을 참는 것, 그 밖의 경건하고 남을 위한 삶에 필요한 일상의 훈련을 참을 수 없는 성가신 것으로 여기게 한다.
제멋대로 생활하는 가정에서 영성과 도덕의 능력을 찾아볼 수 있을까? 교회, 선교 단체 구호 기관, 학교에서 다음 세대에 효율적인 자원과 활동을 기대해야 할 사람들이 이런 청년들인가?
한편 우리가 구경거리에 넋을 빼앗긴 아이들처럼 종교적 오락에 심취하고 있는 동안 세상은 교회와 가정, 성소와 제단, 강단과 회중석, 상업과 사회를 차지하고 있다.
기독교 가정
이런 상황을 해결할 것은 기독교 가정밖에 없다.
• 하나님이 정말로 통치하시고 그분에게 충성하는 가정
• 부드러운 듯 야무지고 철저한 경건 훈련으로 보호받는 가정
• 아침과 저녁 예배의 영원한 향기가 가득한 가정
• 그리스도의 임재를 즐거이 경험하여 광채를 더하는 가정
• 질서와 법도가 있으나 부모의 본이 더욱 돋보이는 가정
• 모든 일에 양심을 지키며 생활하는 가정
• 예수 그리스도가 최우선으로 중요하고 신나고 즐거운 가정
•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시 144:22) 제 길을 달리는 용사처럼 즐거워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가정
• 적을 꾸짖을 수 있는 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