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이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로마서 5장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소망입니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들이 의외로 자살율이 높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 이유 중 하나가 삶이 더 나아질 소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든 나라는 먹을 소망이라도 있기 때문에 자살율이 낮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는 뭔가 조금이라도 낳아질 소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땅의 소망들은 이루어도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막의 신기루와 같아서 바라던 것을 이루면 잠시 만족하는 것 같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목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이것을 ‘부끄러움’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루어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향한 소망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롭고 이루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설사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바라던 모든 소망을 다 이루고 나름 만족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영원히 부끄러워질 날이 옵니다. 세상에서 이룬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소망은 오직 하늘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하늘을 향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소망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세상에서 의롭고 선한 사람을 위해서 대신 죽는 사람이 역사에 기록될 만큼 가끔 있기는 하지만 아무 자격이 없는 죄인을 위해 대신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죄인을 위해서 아들을 죽게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믿고 받아들인 사람이 가진 소망은 절대로 그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세상의 뜬구름을 잡는 소망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그 소망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 소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을 수록 더 즐겁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로 우리에게 맹세하신, 분명히 이루어질 하늘의 소망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낙심하겠습니까?
낙심할 것이 없다고 어려움도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이 소망이 없는 사람들과 똑같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질병과 가난, 그리고 관계의 문제와 끊임 없이 올라오는 감정적인 어려움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믿기 때문에 받는 불이익
까지 많은 것들이 믿는 우리를 괴롭힙니다.
하지만 소망이 클수록 어려움의 무게는 작아집니다. 반면에 소망이 없는 사람은 좋은 일도 괴롭게 느껴집니다. 미국에서10년 만에 가족을 만나러 한국에 가는 사람은 좁은 이코노미석도 기쁘기만 합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로 해외에 도피했다가 잡혀서 국내 송환되는 사람은 비즈니스석도 괴롭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환란 중에 계시는 성도 여러분! 환란을 하나 하나 상대하여 기도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더 많이 여러분의 마음에 소망으로 부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소망이 충만하면 환란도 기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사도들이 대제사장들과 공회에게 잡혀가 억울하게 채찍을 맞고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우습게 보고 논쟁을 하다가 오히려 밀리게 되자 권력을 이용해서 그들에게 보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소망이 없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분한 일입니까?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5:11-12)
그리고 자기들이 예수 이름을 위해 이런 억울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을, 하나님 주신 복으로 알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그 중에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성도님들이 겪는 어려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비록 자기의 실수로 당하는 어려움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이긴다면 주님께서 반드시 기억하시고 상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문제도 하늘의 소망을 생각하며 가장 성도다운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도라 할지라도 그 믿음의 분량에 따라 믿음이 흔들립니다. 작은 손해가 있거나 누가 조금만 자존심을 건드려도 화를 내거나, 조금만 몸이 힘들어도 신앙생활이 무너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난 세월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당시에는 너무 괴로웠던 일들이 이제는 왜 괴로웠는지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 일들이 많을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 중 많은 것이 별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문제가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인데, 그것도 믿음의 기도와 빛이 되는 거룩한 삶으로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어려움의 근본적인 이유는 하늘 소망이 충만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도 구하는 자에게 풍성하게 주실 이 하늘의 소망을 구하고 채워서 넉넉히 세상을 이기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부끄러움의 열매 맺을 세상의 소망을 버리고 하늘의 소망을 간절히 구하게 하소서
-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주님 주시는 소망으로 이기는 하늘의 능력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