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라는 가면을 쓰고

드디어 그 날이 왔다. 군에 입대한 아들을 첫 면회하는 날이다. 혹시 빠뜨린 것이 없나 꼼꼼히 챙기느라 밤새 잠을 설쳤다.

양주군 신암리, 산으로 뚤러 싸인 이 곳이 아들이 있는 곳이라니…. 면회 신청을 하고 면회실로 가는 중에 많은 군인들 틈에 섞여 있는 아들을 보았다. 주먹만한 얼굴만 나와 있는데 어머니는 아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신비로운 사랑의 능력이리라.

면회실로 아들이 왔다.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아들을 안았다. 얼굴을 부비며 “이그 장한 내 새끼!”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는 따뜻한 잠자리가 오히려 가슴 아프다.

맛있는 반찬 한 입에 넣지 못하고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 그 아들이 내 앞에 와 있는데 할 말을 다 잃고 나는 그저 “이그 내 새끼!”하며 등만 어루만졌다.

아버지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계속 환하게 웃으며 잘 있었노라던 아들이 심각한 말을 해 왔다.

“엄마! 사실은 저 너무 힘들어서 괴로워요, 저보다 한 달 먼저 들어온 상관이 저를 얼마나 못살게 구는지 한 번 대판 붙고 말 거예요. 매일 연병장을 뛰고 자기에게 와서 보고한 뒤 밥을 먹으래요. 제가 천식이 있어서 아침 일찍 뛰는 것이 고통스럽고 다 뛰고 가면 식사 시간이 끝나서 밥을 못 먹어요.”

아들의 말을 듣고 나니 나의 온몸에 힘이 다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심장이 딱 멎을 것 같은 것을 겨우 참고 우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아들에게 말했다.

“그 상관이 아무래도 자기가 졸병일 때에 비해 네가 편해 보여서 그런 것 같아. 그러니까 연병장을 더 잘 돌아라. 괴로워하며 억지로 돌지 말고 즐거워하며 노래하며 돌아라. 다 돌거든 상관에게 고맙다고 해라. 어쨌든 많은 사람 중에 너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은 고마운 것 아니냐. 그 어떤 것보다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것이잖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온 후 나에겐 또 하나의 일거리가 생겼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난 시간이 아들이 연병장을 뛰는 시간이어서 나도 우리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았다.

그렇게 한 달이 다 되어 갈 즈음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시작되는 아들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들의 편지 내용은 이랬다.

“어머니! 저는 오늘에서야 하나님의 축복이 시련이라는 가면을 쓰고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연병장을 뛰면서 때로는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 날로 단번에 끝장을 낼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완전 군장을 하고 구보를 하면서 저는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지난번 구보 때는 천식으로 숨이 막혀 뛰지 못하고 쓰러졌는데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뜬히 다 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상관을 통하여 저의 지병인 천식을 다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 상관이 너무 고마워서 고맙다고 경례를 했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일부터는 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내일부터는 저 스스로 뛰겠습니다. 어머니께 이 기쁨을 ‘할렐루야!’ 소리쳐 보내드립니다.”

그 이후 아들도 나도 우리 인생에 달려드는 어떠한 시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련이라는 가면을 벗겨내면 그 속에 축복이라는 실체가 숨겨져 있는 것을 항상 경험하기 때문이다.

유정옥 사모님의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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