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때와 축복의 때를 구별하라
호세아 4장 7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5장 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저는 어릴 때 채소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깨소금과 참기름으로 맛있게 무친 시금치만 좀 먹었을 뿐 다른 야채나 나물은 음식이라기 보다는 약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거기에서 무슨 맛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채소에서 맛을 느낍니다. 저는 아직 그 경지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만 채식만 하시는 분들은 각 채소마다 고유의 맛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 양념을 하지 않고 살짝 데쳐서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있다고 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이런 사람들은 여러가지 현대의 질병 때문에 고생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입맛을 훈련해야 합니다.
반면에 입맛을 훈련하지 않고 그저 자기 혀를 기쁘게만 하는 사람은 결국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일이 많습니다. 육체는 소량의 독소들은 해독할 수 있지만 일정한 양을 넘어서면 몸에 그 독들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맛있는 음식의 다른 이름은 질병이고 맛없는 음식의 다른 이름은 건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모든 요소들은 다 겉모양과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4장 7절과 5장 15절의 말씀이 바로 그 숨겨진 이름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4장 7절의 말씀을 보면 번성의 다른 이름은 범죄입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신실한 신앙인들도 번성하면 범죄하는 일이 많습니다.
가장 좋은 예로 이스라엘의 최고 성군인 다윗왕은 그 번성의 절정에서 파렴치한도 손가락질할 만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북왕국 최고의 마녀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그에게 누명을 씌워 죽였습니다. 다윗은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그를 죽였습니다.
이 두 가지 범죄 중에 무엇이 더 악하고 파렴치하게 느껴집니까? 이세벨과 다윗의 이름만 빼고 그 내용만 본다면 다윗의 범죄가 더 추악하지 않습니까? 다윗은 곤고할 때는 그런 죄를 마음에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오직 번성했기 때문에 그런 죄를 지었습니다.
성경의 인물을 예로 들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니 번성할 때에 믿음이 성장하는 사람은 열의 한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제 자리만 지켜도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번성 자체가 악은 아닙니다만 번성하면 범죄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반면에 고난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5장 15절의 말씀처럼 고난의 때만큼 주님께 낮아지고 가까이 가게 될 때가 또 있습니까?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번성하는 날을 기다리며 고난을 참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 받을 때가 진정한 번성이다” 고난이 진짜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편71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말이 아닙니다. 지난 일을 되돌아 보는 시편 기자에게 진짜 축복은 주의 율례를 알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번성의 시간은 그 때로 끝입니다. 번성의 열매를 하늘에 심지 않는다면 번성은 시간을 태우는 불과 같은 것입니다.
반면에 많은 경우에 고난의 시간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준 거름과 같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극심한 고난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미지근한 신앙이 뜨겁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죄악된 본성은 번성을 원하지 고난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번성을 멀리하고 고난을 택하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기도 하고 광야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1956년 짐엘리옷을 비론한 다섯 명의 선교사가 에쿠아도르 정글에서 순교했을 때 미국의 일간지들은 “What a waste!” (얼마나 의미없는 손실인가!)라며 기가 막힌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내 남편의 죽음은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닙니다.” 라며 반박했습니다. 그녀의 이 말은 그 일이 있고 몇 년후 그를 죽인 모든 부족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증명되었습니다.
그 부족을 위해 순교의 피를 흘린 짐 엘리엇은 선교를 준비하며 쓴 일기에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것을 잃는 것은 절대로 손해가 아니다.” 라고 썼습니다.
성도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축복의 때와 시험의 때를 구별하지 못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갈 때가 축복의 때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시험의 때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이단사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설교가 마음에 부딪힐 때가 성장의 기회입니다. 마음에 부딪힌다는 것은 자기의 그 말씀이 자기의 죄성을 건드렸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설교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자기 마음에 맞는 말을 들었다는 의미입니다. 회개의 메세지도 딱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만 간을 맞추어야 합니다. 모자르면 능력이 없는 것이고 선을 넘으면 무례한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자는 것도 실상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맞게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기만 스스로를 깎고, 낮은 자세로 남을 섬기면 되는데 항상 자기 눈에 맞지 않는 사람을 보며 “저 사람 때문에 교회가 어렵다”고 비판합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들이 내 눈에 거슬릴 그 때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자기를 낮추며 다른 사람을 섬긴다면 자기한계의 벽이 깨지며 믿음이 성장할 것입니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번성을 바라지 마십시오. 항상 고난을 이길 힘을 구하며 구원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번성의 때에 겸손하게 하시고 고난을 준비하는 지혜를 주소서
- 고난의 때에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축복을 바라고 견디어 구원의 열매 맺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