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수술대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13장에서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 듣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이 하는 말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할례자들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에 존재했고 지금도 교회마다 넘치는 외식하는 신앙인들을 향해 외치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진실하다 할지라도 육신의 죄성때문에 여전히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그 삶 가운데 있는 자들을 향해 하는 말입니다.
“나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입니다” 라는 고백을 한다 할지라도 그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 또 다른 자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범죄자로부터 목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을 시험할 수 있는 수천 가지의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제대로 지키지도 않는 율법을 자랑하는 것과, 그리도인들이 그 등에 짊어지지도 않는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똑같은 일입니다. 어제 나눈 말씀처럼 십자가를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한다면 십자가는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죽이는 칼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시장 어귀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의 믿음을 자랑하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에서 상이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자기가 믿는다는 사실만을 믿으면서 십자가를 지지는 않는다면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 고린도 전서 3장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은 구원’일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자랑은 비교의식과 우월감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돈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돈 자랑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자기보다 많이 배운 사람들 앞에서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서 자기 신앙을 자랑하는 것은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뭔가 특별해서 구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으스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자신의 현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닙니까? 그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것이 분명한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서 “믿는 사람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 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항상 자기가 예수님을 죽인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고 산다는 말입니다.
율법에도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은 자랑하는 자에게가 아닌 행하는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십자가에는 영생의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은 그 등에 십자가를 짊어진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그 삶을 주신 것처럼 나도 죄인들을 위하여 나를 내어 주는 삶입니다. 성도는 오직 이런 삶을 통해서만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 십자가를 말하는 사람이 그 등에 십자가가 없을 때 하나님의 이름은 믿지 않는 자들 중에서 모독을 당하십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평생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그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주님 섬기듯이 섬길 것입니다.
교회가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주님께서 남겨 놓고 가신 일을 이루는 사람들이 성도이고 교회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3년 반 밖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신 이유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땅에서 대신 이루어 드리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지요.
사람이 자기의 명예와 자존심을 느끼는 것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 명예와 자존심을 높이거나 먹칠을 하는 일은 입과 손과 발이 합니다. 우리 주님의 이름이 땅에서 높아지고 십자가의 공로가 찬양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연히 세상은 방해를 합니다. 특히 사람의 믿음이 자라려고 할 때, 주님을 위해 일할 마음이 충만할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방해를 합니다. 교회가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도 교회 밖의 방해보다 안에서 일어나는 방해가 더 큽니다.
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할례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게 했는지 머리에 그림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거기에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칼이 나의 마음을 찌르며 벌거벗고 사람들 앞에 서는 부끄러움이 나를 고통스럽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에 거하는 동안에 그 고통과 부끄러움을 당하여 주님 앞에 인도받는 것이 영원히 유익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싫어합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힘든 이야기를 듣기 싫어합니다. 전하는 사람이 그 말씀을 전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며 귀를 닫아 버립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의 자격이 아니라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입니다. 그러니 아직 오늘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 우리는 마음이 힘든 이야기를 듣고 자기를 고쳐야 합니다
말기에 암을 발견해서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죽는 것보다 치료가 가능할 때 발견해서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고 헛구역질이 나오는 항암치료를 받아 사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것처럼 말입니다.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는 것을 다른 모양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십자가라는 수술대 위에 올라선 형태가 됩니다. 거기서 우리가 말씀의 칼로 새롭게 되는 수술을 받는 것이지요. 이 사실을 믿고 세상에서 받는 영광보다 주님 닮는 고난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삶을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자랑하고 감사하는 것이 끊이지 않는 은혜의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십자가를 자랑만 하지 말고 우리 등에 짊어지게 하소서
- 주님 남겨 놓고 가신 일을 이루는 몸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