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말 겸손한 태도

빌레몬서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주님의 나라는 사랑으로 세워집니다. 성도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 뿐 아니라 세상에서는 상하 관계로 여겨지는 관계도 오직 사랑과 존중으로 이루어질 때 주님의 나라는 주님의 나라답게 서게 됩니다.

빌레몬서를 쓸 때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인 오네시모를 만나게 됩니다. 오네시모의 주인은 이 편지의 수신자인 빌레몬이었는데 그는 골로새의 시민으로 믿음의 사람이었고 바울에게 복음을 전함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종은 주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은 지금의 생각보다는 훨씬 더 죄인이었습니다.

노예제도가 있던 19세기 미국에는 지금보다 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많았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지금 백인이 흑인을 대하듯이 노예를 대한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빌레몬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도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에게 생명의 빚을 진 빌레몬은 얼마든지 바울의 부탁대로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었고 바울은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은 그것을 부탁하는 바울의 태도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제자나 다름이 없는 빌레몬에게 명령이 아닌 사랑을 가지고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진리를 거슬러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에게는 단호하지만 성도들에게는 사랑으로 권면하고 부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와도 이런 겸손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잠언 15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똑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어떤 표현을 어떤 태도로 이야기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단어 선택과 말투가 똑같은 말도 전혀 다르게 들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 상대방이 나를 더 존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짜증이 효과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있더라 하더라도 그는 짜증과 분노라는 감정을 피하는 것일 뿐 사실 나를 존중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어린 자녀에게 무섭게만 말하고 쉽게 화를 내는 부모가 있다고 해봅시다. 아무리 바른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그랬다 할지라도 자녀들이 어릴 때에는 그것이 무서워서 부모의 말을 순종하는 것 같지만 반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그 때부터 여러 갈등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 바른 것을 유순한 말과 감정으로 가르쳐 주었다면 그 결과는 다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무섭게 하는 방법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해야겠지만 나중에 그들이 장성해도 갈등이 생길 일은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오늘 바울과 빌레몬처럼 선생과 제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레몬이 자기의 말을 들을 것을 안 바울이 빌레몬에게 정중하게 부탁한 것이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면서 동시에 빌레몬에게도 은혜를 끼쳤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과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빚진 자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누구도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은혜를 더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빚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더 많이 받을수록 더 겸손해져야 맞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에 거침이 없습니다.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자기의 욕심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솔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면서 그것을 허물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남이 그럴 때는 손가락질하거나 기분 나쁘게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말을 함부로 하면 누구나 다 기분이 상합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 뿐입니다. 함부로 반말을 하고 남의 행동을 지적하고 간섭하는 것은 절대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옳은 것을 권면할 때도 겸손한 표현과 정중한 태도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종일 누군가에게 말하고 행동한 것을 반드시 다시 곱씹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의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나 한 사람이 제 몫을 해낸다는 것은 혼자 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본이 되고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말에서 생명의 향기가 나고 남을 대하는 태도에서 십자가의 사랑이 뭍어나오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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