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애통하는 자는 슬픔을 당한 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팔복은 하늘의 복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을 복을 천국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애통하는 자도 당연히 천국과 관련된 이유로 애통하는 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소망을 가졌는데 애통하게 되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첫째, 죄의 문제가 있습니다. 삶의 허무함을 깨닫고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를 향하게 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자기의 죄를 보게 됩니다. 자기를 지으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자신은 그분 앞에 온갖 죄로 더러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죄를 깨닫고 괴로워하는 것을 애통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둘째, 삶의 문제가 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왜 좁습니까? 주님 뜻대로 세상을 살려고 하면 많은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유혹이 있습니다. 가까운 이들의 박해가 있고 세상권세의 박해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당한 고난을 보십시오. 스데반이 죽은 후에 그전까지는 기쁨 뿐이던 예루살렘교회에 환란이 닥쳤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나 성도들은 이런 어려움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님 주시는 위로와 능력으로 이겼을 뿐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유혹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신은 이 어려움들을 피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그런 어려움들을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진흙 속에 진주가 묻혀 있는데 진흙을 묻히지 않고 진주를 캐낼 수 있겠습니까? 진주가 천국의 보배라면 진흙은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과 같습니다. 믿음이 진짜라면 그 믿음은 반드시 고난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대표기도를 할 때도 고난에 대한 기도를 많이 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하늘의 복은 반드시 세상의 고난을 불러들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아는 성도라면 고난을 피하기를 구하기 보다는 고난을 넉넉히 이길 힘을 주시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위로입니다.
어떤 성도가 믿음 때문에 큰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주님께 기도를 하는데 환상을 보여주시더랍니다. 그 환상에서는 자기가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가고 있는데 앞에 뾰족한 가시를 가진 나무와 거친 바위들이 놓여있어서 배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성도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 가시나무와 바위를 치워주세요.” 그랬더니 주님께서 이렇게 물어보시더랍니다. “저 나무와 바위를 치워줄까, 아니면 물을 불려줄까?”
이 성도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물이 불어나면 더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물을 불려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물이 불어나서 위에서 보았더니 그 가시나무와 바위는 너무나 아름다운 산호초였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죄의 문제로 애통할 때 주님께서 십자가의 은혜로 위로하시면 죄를 모를 때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고난때문에 울며 주님께 나아갈 때 믿음의 능력을 더하셔서 위로하시면 고난이 하늘의 복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육체의 삶도 땀흘리며 노력한 것이 나중에 유익이 되는 것처럼 하늘의 복은 반드시 애통함이 있어야 더 아름답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편 126:5)